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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13. 2020

파티 없는 생일

다른 해와는 다르게 올해는 딸이 생일 파티를 해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올해 생일 파티를 못한 사람이 우리 딸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생일날을 손꼽아 기다리거나 이것저것 희망사항을 말하지도 않았다. 코로나 이전에 사귄 친구들은 다들 이사를 가고, 코로나 이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아이들이 어울려 놀만한 기회도 없었기 때문에 학교 친구들을 그냥 같이 있을 때 어울리는 정도의 친구로만 생각하는 듯했다. 지난주에 아빠한테서 미리 생일 선물을 소포로 받았고, 선물을 그다지 잘 챙기지 못하는 나한테서는 주말에 시내에서 같이 쇼핑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 3차 확산이 시작되었다. 생일 파티도 못 해 줬는데, 시내에도 못 가게 되면 너무 서운할 것 같기도 하고 또 곧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실시하면 방콕 될 게 뻔해서 외출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시내에 간 김에 여권 사진도 찍기로 했다.


대중교통 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시내에 가는 길은 언제나처럼 둘이서 걸었다. 가는 길에 사진관이 있나 살펴보니 대략 3킬로 정도 되는 거리에 딱 한 군데 보였지만 주말이라 문을 닫은 듯했다. 시내에 도착한 후 예전에 어렴풋이 지하상가에서 스튜디오를 본 것 같아 혹시나 하고 가 보았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3차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지하상가는 다행히 복잡하지 않았다. 길게 뻗은 지하상가의 왼쪽 편으로 계속 걸어가니 사진기를 파는 곳이 세 군데 보였다. 또 한참을 가니 다행히 스튜디오가 눈에 뜨였다.  스튜디오도 세 군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첫 번째 스튜디오의 문이 닫혀 있길래 두 번째 스튜디오로 갔다. 오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인상 좋은 아저씨가 상냥하게 맞아 주셨다. 둘 다 여권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고 딸이 먼저 사진 촬영을 했다. 스웨트 팬츠에 반팔 티를 입고, 머리는 빗질을 한 듯 만 듯한 아이를 보고 아저씨가 약간 당황하셨을 것이다. 아이를 웃게 려고, "남자 친구 생각을 하면서 예쁘게 카메라 보고 웃어요." 하시는데 아이에게 남자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아실 리가 없다. 유치원 때부터 알던 남자아이들을 십 년 동안 같은 학교에서 보니 딸에게 남자아이들은 그냥 남자 형제들 같단다. 딸의 촬영이 곧 끝나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이번에는 아저씨께서 날더러, "남편 생각하면서 카메라 보고 웃어요!" 하신다. 그래서 내가 활짝 웃었더니, "아직 사이가 좋으신가 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 화내시던데..." 그러시더니 이번에는 "안주 생각하시면서 활짝 웃으세요!" 하시길래, 정말 깔깔대며 웃을 뻔했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면 바로 인화해서 주실 줄 알았더니, 포토샵으로 약간의 보정 작업을 하셨다. 여드름 자국이나 고개가 삐딱한 부분 머리카락 튀어나온 것 등을 세심하게 수정해 주셨다. 아이 사진은 마치 모델 사진처럼 예뻤다. 한쪽 쌍꺼풀이 살짝 두꺼워 약간 졸린 듯하게 보이는 것 빼곤 정말 완벽했다. 내 사진 보정에 들어가시면서, "젊었을 때 눈이 참 예뻐다는 말 많이 들으셨겠어요." 하신다. 그런 말을 들어 본 기억이 없어서, " 젊었을 때 아무개 닮았다는 말은 들어 봤어요. 지금은 당연히 아니고요"라고 대답했다. 와~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벌써 젊었을 때 예쁘다는 말을 그러니까 왕년에...라는 말을 듣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최근 집을 알아보면서 몇 년도 이후에 지은 집으로 검색 조건을 달면서, 2000년이 벌써 20년 전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고 당황스러웠다. 지난 20년간 분명히 매 순간을 열심히 살았는데, 왜 거울 속의 내가 이렇게 낯설게 보일까? 마치 어린아이에서 갑자기 노인으로 변한 듯이 내 시간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젊은 시절 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체형에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자신감에 넘치던 매력적인 여자였다. (남편이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진을 찍고 아이가 자주 가는 옷가게에 들렀다. 자신의 생일 선물이라는 걸 알고 아이는 이것저것 골랐다. 그래도 한 번도 분에 넘치게 뭘 요구하는 적은 없다. 아이에게 지나친 사치를 허락하거나 지나친 절약을 요구하지 않고 참 적절하게 소비하는 교육을 시킨 것 같아 뿌듯했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딸은 자신과는 다른 인생을 살길 바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옷을 사고 밖으로 나오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장실도 사용할 겸  큰 건물 일층에 있는 맥도널드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큰 건물 치고는 일 층 화장실이 너무 작았다. 밖에서 기다리니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나오더니 세면대를 외면하고 바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화장실을 쓰고 나오니, 이번에는 옆 칸에서 나온 사람이 또 세면대를 지나치고 바로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전염병이 나도는 이런 시국이 아니더라도 화장실을 쓰고 손을  안 씻는 것은 상당히 비위생적인 행위이다. (미국에 갈 때마다 꼭 가는 프랜차이즈 식당이 있는데, 한 번은 그곳 웨이트리스가 화장실에서 손을 안 씻고 나가는 것을 보고 너무 불쾌해서 매니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화장실을 사용한 그 짧은 시간 동안 본 두 사람이 모두 손을 씻지 않고 화장실을 나간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곳 건물의 직원이 아니었길 바란다.


맥도널드 저녁식사를 끝으로 시내 탐방은 종료되었다. 보슬비를 피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들고 온 쇼핑백에 생일 카드를 넣어 주는 걸로 파티 없는 생일도 끝이 났다. 이제 생일 파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부쩍 커 버린 아이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그러다 어느 날 내 품을 떠나버릴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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