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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06. 2020

할머니 집에서 그만 좀 뛰시라고 전해 주세요

퇴근 시간 휴대폰을 확인하니 문자가 와 있었다. 층간소음 이웃센터에서 녹취 스케줄을 잡으려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월에 신청해서, 월에 면담하고, 드디어 녹취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일 진행이 코로나 이전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서둘러 층소센터에 전화를 했다. 전에 상담을 해 주셨던 직원이었다. 날짜를 잡고, 몇 가지 의문 사항을 물어본 다음 전화를 끊었다. 호텔 예약을 해야 했다. 다음날 직장에서 가까운 호텔에 들러서 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애완동물을 데리고 숙박을 하려면 매니저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호텔 매니저한테서 연락을 받기로 하고, 내 연락처를 남기고 나왔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호텔도 알아보았다. 호텔 앱에 나온 숙박업체 중에서 애완동물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딱 세 군데뿐이었다. 모두 러브모텔이라고 불리는 청결하지 못해 보이는 곳이었다. 그중 한 군데는 무료 취소가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길래 일단 곳에 예약을 해 두었다.


그다음 날 전날 방문했던 호텔에서 전화가 왔다. 매니저가 다행히 허락을 했단다. 비용은 훨씬 많이 들지만, 이 시국에 러브모텔에서 자야 하는 신세를 면하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날 밤부터 소음 기록을 시작했다. 소음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꼼꼼히 작성했다. 소음 기록은 올 초부터 해 오고 있었지만, 한 동안 정신력으로 소음을 이겨 보려고, 마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기록을 소홀히 한 적도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오후 5시 25분부터 시작된 소음은 내가 잠자려고 누운 10시 10분까지 계속되었다. 그다음 날 오전 8시 05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소음은 내가 잠시 외출을 한 오후 1시 15분까지 계속되고, 오후 2시 49분에 귀가를 하니 여전히 뛰어다니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오후 5시 16분에는 방망이질 (절구질) 같은 소리까지 났다. 소음은 한 시도 끊이지 않았고, 저녁 8시 12분부터는 온몸으로 내리찍는 소리가 났다. 저녁 8시 30분에 잠옷 위에 코트를 입고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위층이었다. 마치 그 집 문 현관에서 이야기를 하듯 사람들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한 층 더 위로 올라가 보았다.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뛰는 소리, 고함치는 소리, 쿵쿵 거리는 소리가 밤 10시 35분경 잠잠해지는 것 같아 잠이 들었다. 그다음 날 아침 7시 41분부터 뛰는 소음과 온갖 기계음이 다시 계속되었다. 가슴에 심한 통증이 왔다. 가슴을 손으로 눌러 가며 기록을 하다가 분노가 끓어올랐다. 오전 10시 13분 거실로 가서 경비실에 인터폰을 했다: "윗집에서 삼일 밤낮으로 뛰는데 정말 미칠 것 같아요. 보나 마나 또 할머니 혼자 계신다고 하실 거예요. 할머니한테 제발 집에서 그만 좀 뛰시라고 전해 주세요!" 그 전 주에도 나흘 밤낮을 소음에 시달리다가 5일째 되던 날 밤 뛰어다니며 바닥에 공 던지는 소리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연락을 했더니, 할머니 혼자 있다고 시치미를 뗐다. 윗집 사람들의 클래스다. 툭하면 오리발에 거짓말이다. 경비실 직원과 통화를 마친 후 윗집 인터폰 신호음이 들렸다. 계속 신호음이 나는데 받지 않는 것 같았고, 뛰는 소리는 여전히 났다.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일 분 후쯤에 경비실에서 우리 집에 연락을 했다: "윗 집에 젊은 남자가 받더니, 애가 잔다고 하면서 자기 윗 집에서 뛰는 소리 들린다고 하길래 그 윗집에 또 연락했더니 그 집도 애가 잔다고 하네요." 이건 뭐 21세기 유머인가? 기가 막혔다. 두 집에서 애들은 다 자는데 어른들이 뛰어다닌다는 말인가?


살다 보면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있다. 층간 소음도 그럴까? 나는 항상 문제 해결을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하는 편이라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보려고 한다. 내 집에서 내가 휴식할 권리를 찾기 위해 나는 부르짖는다: "그만 좀 뛰어다니라고 해 주세요"


중국의 소 황제들 못지않은 한국의 말 황제들. 가정교육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행동하게끔, 그리고 부모가 어린아이 일정을 정해서, 매일 같은 시간 대에 재우고, 먹이고, 밖에서 뛰놀게 하고, 그런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이가 공동체 질서도 못 지키고, 남에게 피해만 주는 암적인 존재로 자라게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원래 그렇다>는 게으른 부모의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짐승도 길들여 집에 데리고 살고 있지 않은가? 사람의 아이도 길들여서 사람답게 살도록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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