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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27. 2020

나는 층간 소음 피해자다

청각 장애인들은 소리를 듣기 위해  보청기를 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소음을 안 듣기 위해 하루 종일 귀마개를 해야 한다. 왜 장애가 없는 내가 하루 종일 귀에 뭔가를 고 살아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경비실 호출 버튼을 누르고 싶은 욕구를 참는다. '저러다 말겠지, 언젠가는 지치겠지'


좀 전에도 야생동물의 스탬피드를 방불케 하는 소음에 옆에 두고 수시로 적고 있는 소음 노트를 확인해 보았다. '이번에는 경비실에 뭐라고 할까?' 고민하면서 말이다. 정말 12월 한 달 중 소음 기록이 없는 날은 단 하루뿐이었다. 두 노인네 산다는 가구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가?

 

겨울 휴가를 맞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안방에서 지낸다. 하지만 안방에서 들리는 소음으로는 윗집의 안방은 멀티룸임에 틀림이 없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월풀 소리도 들리고 또 어떤 때는 세탁기나 식기 세척기 돌리는 소리도 들리고 간간히 망치질 소리와 드릴링 소리도 들리고, 대부분은 아이가 우두 두두두 뛰는 소리 그러다 우르릉 쾅쾅 같은 번개 치는 소리도 들리고 어떤 때는 온몸으로 바닥을 내리찍는 장구 장단도 들린다.


그 집 아이 뛰는 소리가 심할 때는 나는 혼자 무키무키 만만수의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다>는 곡을 개사해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나는 외양간의 망아지 ㅅㄲ

빠 뿜빠 뿜 뿜 뿜 뿜 뽀~


참고: https://youtu.be/Bh60X1R8GiE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요즘 층간소음 문제 역시 정부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악이다.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 주는 자신의 행동을 고치지 않고 피해자 몰아붙이기에 급급하다. 애는 원래 뛰는 거라고요? 아파트는 원래 사람이 쉬고 자는 곳인데요? 뛰는 곳은 운동장이고 놀이터지요!라고 말하고 싶다. 층간소음 이웃센터에 신청해서 상담도 받았고 녹취도 했다. 관리 소장님과도  수차례 면담도 했었고, 동대표님도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한 번은 소란죄로 신고까지 해야 했다. 층간 소음을 해결하려고 내가 안 해본 것은 주먹질과 망치질뿐이다.


참아보려다가 또 분통이 터져 경비실에 연락을 했다. 몇 분 후에 돌아온 대답은 뻔했다. 이번 오리발 멘트는 "거실에 저 혼자 있는데요. 우리 윗집에서 소음이 나요." '차라리 시체 썩는 냄새를 견디는 것이 밤낮없이 나는 소음을 견디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최근 휴가 동안 밀린 일을 좀 해 보려고 하니, 낮에 하도 시끄러워 밤낮을 바꿔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밤 윗집에서 잠을 자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벽 세 시가 넘어도 계속되는 인기척에 수시로 화장실 오가는 소리. 어떤 때는 애 뛰는 소리가 자정이 넘어서도 들리고 이른 새벽 (여섯 시경) 다시 들린다.


수 백 번을 말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사람들, 타인의 권리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소유한 아파트에서 맘 편히 쉴 수가 없다. 주말도 휴가기간도 너무 괴롭다. 청각장애인처럼 24시간 귀에 뭔가를 끼고 생활해야 한다. 스트레스로 피부 질환도 생겼고, 한겨울에 개까지 데리고 밖에서 개고생 해야 했다. 병원 치료비에 호텔비까지 쓰지 않아도 되는  돈까지 지불해야 했다.


나는 윗집 아저씨가 밖에서 점잔 빼는 그 얼굴로 나에게 속삭이듯 했던 그 말을 기억한다: "자꾸 불평하면 우린 더 시끄럽게 할 거요." 아저씨의 그 가증스러운 얼굴과 그 집 안방마님의 눈 깜짝하지 않고 지속되는 거짓말, 그 집 아들의 "그렇게 시끄러우면 이사를 가!" 하던 그 뻔뻔함, 그 집 며느리가 나에게 침묵 속에 보낸 야유, 그 집 망아지의 동물성이 싫다. 아니 혐오스럽다는 표현이 더 솔직할 것이다. 층간 소음 피해기간 2년 4개월. 그들은 나에게 2020년 코로나 사태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 이 도시에서 살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악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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