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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25. 2020

파티 없는 2020

남겨진 롤케이크

2020년에는 아무 파티도 하지 았다.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모인 것은 1월 엄마의 장례식. 그 후 나의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남편 생일도 아이들 생일도 모두 파티 없이 지나갔다. 명절에도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길고 긴 여름휴가마저 사원 복지로 제공되는 국제 항공권까지 거절해 버렸다. 크리스마스 휴가도 반 이상은 일을 하며 보낸다. 자발적으로... 어차피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지인이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한 달 전부터 준비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전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었고 곧 5인 이상 집합 금지령이 떨어졌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에 지인에게 문자가 왔다. 파티에 지인 가족 포함 모두 10명이 모인다고. 그래서 불편하면 불참해도 이해한단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정중히 불참 의사를 밝혔다. 한 달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지만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가고 싶진 않았다. 다만 파티에 가지고 가려고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에 사다 둔 롤케이크 트레이며 쿠키들이 골칫거리였다. 다행히 아이가 상당이 많은 양임에도 불구하고 쿠키는 자기가 먹을 수 있단다. 


평소 같았으면 롤케이크를 내가 두고두고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케줄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미루고 있던 다이어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디톡스 다이어트를 시작했기 때문에 6일간은 디톡스  드링크를 마시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크리스마스 파티가 취소되고 덜렁 남겨진  롤케이크가 자꾸 신경 쓰인다. 누구에게 선물을 하려면 꾸미고 나가야 하는데 그것도 귀찮다. 나는 지금 나의 모든 에너지를 일하거나 자는데 쓰고 있다. 오늘 하루만 해도 벌써 세 번을 일했다. 랩탑의 파워가 다 소진되면 충전을 위해 휴식을  겸 매잠을 잤다. 가까스로 내가 목표한 일의 92프로 정도를 완성했다.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고 마는 나는 일을 100프로 완성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 이 속도를 유지하면 내일이면 일이 완성될 것 같다.


디톡스 다이어트도 이틀 치 분량을 다 마셨다. 현재로서 허기는 생각만큼 심하지 않다. 어제저녁에는 속이 쓰린 느낌이 있어서 물을 많이 마셨다. 구입한 디톡스 제품 설명서에 물을 많이 마실 것을 권유했다. 평소에 물을 많이 마시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허기를 참는 것보다 물을 마시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남편이 옆에 있었더라면 쌓아놓은 선물을 푸느라 오늘 정신없이 보냈을 텐데 올해는 소박한 크리스마스 의례생략했다. 나는 가족들 은행 계좌에 각각 송금을 하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적는 것으로 크리스마스 인사치레를 마쳤다. 덕분에 미리 사 둔 크리스마스 카드 세 장도 그대로 있다. 늦게 일어난 아이는 아침에 나에게 내가 갖고 싶다고 말해 두었던 아이펜슬과 바디크림 그리고 A4 용지로 간단하게 만든 손카드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런 손카드가 더 좋다.


크리스마스날에도 역시 일을 하며 스쿠루지 할아버지 뺨치게 지독하게 보내다가 카톡으로 지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딱 네 명에게만... 일을 마치고 카톡 문자 보낸 것을 한참 동안 잊고 있다가 나중에 확인 해 보니 모두들 열심히 정성스레 답을 보내주었다.


일을 100프로 다 마치고 나면 다이어트에 더 열중하려고 한다. 운동도 같이 해야 효과를 본다고 하니, 어떻게든 운동을 좀 해 봐야겠다. 크리스마스에 일만 죽도록 하고 게다가 굶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나의 지독함에 사실 나 스스로 감동하고 있다. 나의 섹시한 지독함이라고 명명하면서.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다르다.


다이어트가 끝나고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디톡스 다이어트 후기를 여러 개 읽어 보았는데, 가장 압도적인 의견은 다이어트 효과에 관한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 마는 나는 지독하게 굶을 것이다. 어떤 음식의 유혹도 나의 의지를 꺾지 못할 것이니... 그나저나 롤케이크 트레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전히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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