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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28. 2020

좀비 아파트

코로나 바이러스와 층간소음

*이 글은 현실에서 소재를 취해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 그림으로 표현할 능력이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최근 좀비 바이러스가 유행을 하면서 아파트마다 비상이 걸렸다. 좀비 바이러스는 일명 아파트 바이러스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이 유독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만 좀비로 변하기 때문이다. 좀비 바이러스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출 시에 꼭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정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 이 좀비 바이러스의 잠복기는 대략 이 주에서 한 달 사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감염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잠복기에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 능력은 점점 퇴화되고,  본능적 행동이 강화된 후 반복적 행위로 고착된다. 가끔 무증상 발현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마스크에 의존한 채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좀비 바이러스는 증상 발현 삼 일 전부터 강한 전염력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무지개 아파트는 30 평 크기로 된 28층 건물 네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동은 믿음, 두 번째 동은 소망, 세 번째 동은 사랑 , 네 번째 동은 행복이다.


척척이 네가 무지개 아파트 소망동으로 이사를 온 건 좀비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한 해 전이었다. 그때는  좀비 바이러스가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다. 26층에 살고 있는 척척이 엄마는 요즘 좀비 바이러스 때문에 집 밖을 나설 수가 없다. 그녀는 무지개 아파트에 좀비 바이러스가 이미 퍼져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는 귀마개를 하고도 이불을 세 겹이나 뒤집어쓰고, 무지개 아파트 소망동에서  좀비 바이러스를 최초로 유포시킨 사람이 누구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27층의 온 가족은 이미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안마의자는 24시간 돌아가고, 진공청소기도 마찬가지다. 1초에 한 번씩 들리는 망치질 소리와, 가구를 잡아 끄는 소리 또한 규칙적으로 들린다. 마지막으로 거실을 주기적으로 뛰어왔다가 뛰어가는 소리도 들린다.


척척이 엄마의 추측으로는 안마의자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그 집 할아버지, 진공청소기를 쉬지 않고 돌리는 사람은 그 집 할머니, 1초 간격으로 들리는 망치질은 그 집 아들, 가구를 잡아끌고 있는 사람은 그 집 며느리, 그리고 거실을 계속 뛰어왔다 뛰어갔다 반복하고 있는 사람은 그 집 손자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장금이가 이사를 온 무렵에는 윗집에 노부부가 산다고 했었다. 하지만 어쩌다가 다섯 사람이 모두 좀비 바이러스에 걸려 윗집에 갇히게 되었을까?


최근 좀비 바이러스 백신이 개발되어 유포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좀비 바이러스 치료제는 없다.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은 모든 이성적 판단 능력을 잃게 되고, 하루 종일 똑같은 행동만 반복한다. 증상이 호전되었을 때에는 가끔씩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데, 결국은 탈진, 수면부족, 영양부족으로 사망한다. 아파트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나면,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간혹 좀비들 중에서 상태가 호전되었을 때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탈출에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완치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전염성 바이러스가 몸에 남아 있다. 다행히 이들과 마주쳤을 때 마스크를 하고 6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다면 감염을 피할 수도 있지만, 엘리베이터 같은  좁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곤란해진다. 아직 좀비 바이러스 균이 몸에 남아 있는 그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을 리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좀비 바이러스 감염 이전에 쓰고 있었던 오래되고 더러운 마스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척척이 엄마는 소망동에 또 다른 가구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단을 통해 28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만약의 경우 집으로 도망쳐 오기가 쉽고, 또 일일이 확인하려면 맨 위층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28층 남자가 타고 다니는 구형 ALV가 심하게 파손된 채로 불법 주차된 것을 처음 본 것은 한 달 전이었다.  똑똑이 엄마가 집에서 내려다보니, 그 차는 아직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그대로 세워져 있다. 그 집 남자가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았다면 파손된 차를 한 곳에 그렇게 오랫동안 주차해 뒀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계단에 서서 28 층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아이들 뛰는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났다. 그 밖의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뛰는 소리는 분명 그 집 아이들일 것이다. 피아노 소리는 그 집 아이들 엄마. 그렇다면 아빠는 뭘 하는 걸까? 운 좋게 아파트를 탈출했거나, 수면이나 책 읽기 같은 얌전한 반복행위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똑똑이 엄마는 순간 겁이 났다. 만약 탈출한 남자가 가족을 구하겠다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그녀도 감염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똑똑이 엄마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재빨리 계단을 내려와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똑똑이 엄마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아파트를 떠나자니 갈 곳이 없고, 이곳에 계속 있자니 윗집 좀비들의 소음을 계속 견뎌야 하고, 만약 좀비들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시체 썩는 냄새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었다.


저녁 8시경 안내 방송이 나왔다:

최근 좀비 바이러스가 유행입니다. 무지개 아파트의 주민 여러분께서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하여 가급적 외출을 삼가시고, 외출 시는 꼭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주변에 좀비 바이러스 의심 세대가 있다면 직접 대응하지 마시고 좀비 바이러스 관리 센터에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좀비 바이러스 관리 센터에 연락을 하려면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신고를 한다고 해도 신속히 처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최악의 경우 좀비 바이러스 관리 센터의 직원이 현장방문을 했다가 감염된 채 신고인의 집을 방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치료제도 없고, 좀비 바이러스 환자를 수용할 공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모두가 신고를 꺼리고 좀비 바이러스 관리 센터에서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이 좀비 바이러스 환자들을 이동시키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이 환자들은 반복행동을 강제로 멈췄을 때 매우 난폭해지기 때문이다. 알려진 예로는 동물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반복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을 노려본다는 것이다. 이때 동물 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침방울을 통해 자신을 제지한 사람과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을 감염시킨다.  좀비 바이러스의 무서운 감염력 때문에 사람들은 좀비 바이러스가 의심되는 가구가 있다고 해도 신고를 꺼리고, 시체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그때 어쩔 수 없이 아파트 관리 사무소를 통해서 좀비 바이러스 관리 센터에 연락을 한다.  


똑똑이 엄마는 최근 똑똑이의 행동이 의심스러웠다. 하루 종일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묻는 말에 잘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화장실도 가고, 밥도 먹고, 잠고 자는 것을 봐서는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만약 가족 중에 하나가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좀비 바이러스 관리 센터에서 나온 매뉴얼이 없고 또 가족이라는 정서적 공감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가족의 감염 사실을 알면서도 같이 생활하거나, 아파트를 탈출했지만 추운 날씨로 밖에서 얼어 죽거나, 거리에서 이상 행동을 보이다가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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