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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Dec 31. 2020

2020 해결하지 못한 숙제

제야의 타종 대신 고무망치를 들자!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게 2019년 4월이었다. 나의 글은 나만큼이나 인기가 없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글이라는 게 쓰는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반영한 것이니까.   최근 코로나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층간소음으로 괴롭힘을 당하다 보니, 내가 쓴 상당수의 글들은 어둡고 불만 섞인 글들이다. 나의 브런치는 구독자가 생기는 순간 비구독자가 동시에 생기는 그런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내가 쓰는 글이 그만큼 호불호가 분명한 글임에 틀림없다. 그래도 나는 지금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견디어 내고 있기 때문에, 브런치라는 공간이 있어서 고맙다. 언젠가 내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어 나의 글도 맘 편히 읽을 수 있는, 읽고 나면 기분 좋은 그런 글이 되길 바란다.


2주간의 겨울 휴가 동안 나는 7일을 2020년 잔무처리 및 2021을 계획하는 데, 그리고 9일을 다이어트에 썼다. 그렇게 2020년을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해결하지 않은 일 없이 끝낼 수 있어서 보람되었다. 밀린 일은 했고, 늘어난 살도 뺐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일이 하나 있다. 내가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의 노력과 수고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휴가 시작을 호텔에서 했다. 가족을 다 데리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고 남편과 단둘이 간 것도 아니고, 층간소음 녹취를 위해서 그날 집을 비워줘야 했기 때문이다. 녹취를 마치고 계속 결과 통보가 언제 올 것인가 궁금해하고 있었다. 12월의 마지막 날 오후 12시에 드디어 연락이 왔다. 결과는 소음을 분석해 보니, 자신들의 분석 조건에 따르면 기준치를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화로 안내를 받고, 상담자료와 녹취자료를 신청했다. 통화로 들은 내용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층간소음이웃센터에서 제시한 기준치와 법적 기준치가 일치하는지도 알아보아야겠다. 내가 상담 전화를 주신 분께, 녹취 이후에도 자정이 넘어서까지 계속되는 온갖 소음과, 경비실에 연락하면 그 후 더 격하게 지속되는 윗집의 보복 소음 등에 대해 이야기하자, 자료에 나온 수치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지만 (저녁시간 기준으로 51, 50, 52 데시벨로 특정 시간대와 함께 말했었다. 나중에 자료가 오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로선 재녹취도 힘들고 더 이상 그곳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시청의 환경과 <지방 환경 분쟁 위원회> 연락처를 주었다. 녹취 당시 녹취기를 세운 삼각대가 너무 낮았던 것에 대해 언급했더니, 1.2m에서 1.5m 높이 기준치를 따랐다고 한다. 자료실에서 받아야 하는 자료 신청서를 이메일로 전송받고 (온라인에 나온 서류는 파일이 오픈되지 않았다.) 신청서 작성을 마친 후에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로 다시 전송했다.


곧 시청 환경과에 연락을 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한 시간쯤 후에 다시 연락을 했다. 이번에는 받았다. 직원은 귀찮은 눈치다. 뭐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소송 준비하면서 고통은 더 심하고, 제삼자를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제출해서 승소한다고 해도 3년 치 보상금이 겨우 100만 원이라는 점, 관리 사무소 중재를 통해 협의를 하라는 등의 조언을 했다.


모르고 있던 내용은 아니지만, 층간소음에 관한 법이 이따위이니, 관련 기관도 성의 없이 상담을 하고 지난 2년 4개월을 소음에 시달리다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보고 최후의 방법으로 도움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했을 것이다. 그 직원은  꼭 층간소음 가해자 대변인 같았다.


다음은 내가 층간 소음문제 해결을 위해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 것이다:

경비실 연락 -> 이웃과 면담 -> 관리 사무소장 면담 -> 경찰서  -> 층간소음 이웃센터 접수  ->  동대표 그리고 아파트 회장 개입 ->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와 상담 ->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녹취 -> 지방 환경 분쟁 위원회


아무것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소음은 한 집에서 만드는 데, 왜 해결은 다른 사람들의 몫인가? 3년 동안 이웃 괴롭히고 겨우 100만 원으로 면죄가 된다면, 집에서 쌓인 모든 스트레스를 소음으로 풀면 되겠다.    나도 앞으로는 바닥을 발꿈치로 쿵쿵 찍으며 춤도 추고, 늦은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악기도 연주하고 가전제품도 돌리고, 개는 크게 짖도록 훈련시키고, 아이는 걷지 말고 제발 뛰라고 해야겠다. 문도 쿵쿵 닫고 다니고, 망치도 여러 개 사두었다가 시도 때도 장소도 불문하고 때려 주고,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말이다. 3년 동안 온 이웃 괴롭히고, 누가 불평하면 내가 안 했다고 딱 잡아떼고, 나중에 궁지에 몰리면 겨우 100만 원으로 죗값 치르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 제도도 미비하고, 관련 기관에서는 해결 의지조차 없고, 인간적으로 대화는 통하지 않는 미개한 이웃에게 나만 혼자 문명인으로서의 도리를 지키려 여태껏 시간 낭비를 하고 있었다.


차라리 이사오자마자 고무망치로 대응을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내가 도움을 구했던 여러 사람들에게 까다로운 사람 취급받지 않았을 것이고, 비굴하게 부탁하거나 화내지 않아도 되고, 시간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염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한겨울에 녹취한다고 개까지 데리고 호텔 가서 돈 쓰고, 7시간 동안 추위에 벌벌 떨며 개고생 하지 않았어도 되었다.


이 아파트 이후에 우리 가족이 다시는 아파트에 사는 날이 없길 바란다. 무용한 법과 이기적인 이웃에게 더 이상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가라앉은 배에서 안내방송만 믿고 기다렸던 사람들처럼, 마스터 키를 제거하고 사고역으로 진입하며 안내 방송만 해대는 지하철 안에 갇혀 목숨을 잃은 사람들처럼 나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것에 의지했었구나! 차라리 고무망치를 들었어야 했다. 천장에 구멍이 나도록 두드렸어야 했다. 올해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새해가 시작된다. 나는 지금도 수시로 들리는 망치질 소리와 뛰는 소리, 쿵쿵쿵 간 떨어지게 하는 소리에 듣지도 않는 라디오를 켜놓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차라리 떨리는 손으로 고무망치를 들고 천장이 뚫어지도록 쳐야겠다!


지긋지긋한 2020년이 저문다. 저무는 해가 더 지긋지긋한 층간소음도 함께 가져갔으면 좋겠다. 오늘 밤은 취소된 제야의 타종 행사를 대신해서 온 국민이 한마음 한 뜻으로 고무망치를 들고 천장을 힘껏 서른세 번 두드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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