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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07. 2021

남편의 승진

정확히 남편이 몇 년 만에 승진을 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7년 정도 된 것 같다. 7년이라는 세월이 굉장히 긴 시간 같지만 그 전 직급에서 현재의 직급으로 승진하는 데는 대략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남편의 승진이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니지만 최근 코로나 사태로 발표가 좀 늦게 난 건 사실이다. 10년간 직급에 변화가 없는 나에 비하면 그래도 남편은 늦게나마 직급이 오르니 남편이 승진할 때마다 가끔씩 부럽기는 하다. 나는 직급에는 변화가 없고 대신 해마다 연봉이 오른다. 남편의 직업은 정해진 때에 직급이 오르지 않으면, 옷을 벗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남편이 만약 승진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당분간 퇴직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이 승진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 싶다.


그리고 오늘 갑자기 10년 전 승진한 남편 직급이었던 어떤 사람의 부인이 오만방자하게 행동했던 것이 문득 생각났다. 일하는 여성으로 남편 직급 믿고 나대는 사람을 보면 솔직히 우습다. 그 오만방자하던 사람의 남편의 직급은 지금쯤 더 올라갔거나 아니면 퇴직을 했을 것이다. 남편의 승진이, 남편의 출세가 과연 부인을 우쭐하게 할 만한 일인가? 남편의 성공을 마치 자신의 성공인 듯, 자신의 공인 듯 행동해도 되는 것인가? 만약 내 남편의 직급이 더 오르고, 남편이 더 성공을 하면 나도 우쭐거리게 될까? 그동안 남편의 직급이 너무 높지 않았던 것에 감사해야겠다. 지금도 다행히 남편의 직급은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남편의 직급이 조금 더 높아져서 정년퇴직까지 큰 탈없이 같은 직종에 근무할 수 있게 돼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남편이 직업을 바꾸며 1년 정도 일을 쉰 적이 있다. 그때 실업보조금을 받으며 집에서 아이도 돌보고 운동도 열심히 했었다. 그 1년 중 몇 개월간은 파트타임으로 일도 했었다. 그때는 나도 경력을 쌓기 위해 얼마 안 되는 돈을 벌며 일을 했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검소하게 산 적도 있다. 그 당시에는 분명 힘든 시절이었겠지만, 지나고 나면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남편이 승진을 못했다면 다시 내가 경제적 가장이 될 뻔했다. 남편이 승진을 해서 정말 다행이다. 굉장히 기뻐해야겠지만, 남편이 승진을 못 할 거라는 걱정은 솔직히 심각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담담한 심정이다.


십 년 전 만났던 남편의 직급을 믿고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그녀처럼 내가 행동할 일도 없고, 내 생활이 크게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승진을 해서, 그래서 우리의 퇴직 후 인생 계획에 큰 변화가 없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남편의 승진을 부러워하지도, 과하게 기뻐하지도, 우쭐해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당연히 여기지 않도록, 조용히 그렇지만 의미 있게 남편의 승진을 축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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