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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an 18. 2021

그리 아름답지 않은 주말 풍경

층간 소음 막장 드라마

이 아파트로 이사 오고 아주 오랫동안 나의 주말은 불행했다. 대부분의 주말은 층간 소음으로 얼룩졌고, 나름 참아 보기도 하고, 여러 방면으로 소음 때문에 괴롭다고 호소도 해 보았다. 나의 이전 글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듯이 문제 해결을 위한 나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원칙주의를 고수하는 나는 뭐든  매뉴얼대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층간 소음 유발자와 몇 번 면담도 했고, 아파트 관리 사무소도 통해 보았고, 층간소음 이웃센터에서 상담과 녹취를 해 보았다. 층간 소음 이웃 센터는 시청 환경과를 추천했고, 시청 환경과는 나 몰라라 했다. 시청 환경과 직원은 비공식적으로 합법적 대응 (=보복)에 대해 언급했다. 말하자면 소송한다고 내 기운 빼고, 자신을 귀찮게 하지 말고 나더러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2020년 1월 1일에 나의 합법적 대응이 시작되었다. 뛰어다니는 소음이 시작된 대략 두 시간 후 나의 첫 무언의 대응이 행해졌다. 그리고 그날은 더 이상 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나의 합법적 무언의 대응은 약발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 주가 지난 토요일 오전 10시 50분부터 시작된 뛰는 소리는 9시경에도 계속되었고 그때서야 합법적 무언의 대응을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밤 10시 30분이 지난 후에 나의 인내심은 바닥이 났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경비실에 연락을 했다.


나: 아저씨, 위층에서 아이가 아침 10시 50분부터 지금 거의 12시간째 뛰고 있어요.

경비 아저씨: (마치 내 연락을 기다렸다는 듯 아니면 빨리 나와의 대화를 종료하려는 듯) 네, 위층에 연락해 볼게요.

나:(인터폰이 끊기기 전에) 애한테 술을 먹였는지 어떻게 애가 거의 12시간을 뛰는지 알 수가 없네요.

경비 아저씨: 위층에 연락해보고 알려 드릴게요.

(위층에 경비실에서 인터폰 신호음이 갔다. 윗집 아저씨와 경비 아저씨의 대화가 오고 갔지만 내용은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 집 인터폰 신호음이 울렸다.)

나: 네!

경비 아저씨: 위층에는 거실에 아저씨 혼자 있다고 하시는데요.

나: '이번에는 아저씨 혼자 있단다.' 그 집은 항상 그래요. 집에 혼자 있다고. 지금도 뛰는 소리 들리는데 여기로 올라와 보시겠어요?

경비실 아저씨: 여기 다른 직원과 상의해 보고 올라갈 수 있는지 알아볼게요.

(그리고 위층에 인터폰 신호음이 다시 울렸고 경비 아저씨는 위층 아저씨와 또 대화를 나누었다. 이번에도 대화 내용은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경비실에 다시 인터폰을 넣었다.)

나: 아저씨 참 이상하시네요! 우리 집 오시는데 위층에는 왜 연락을 하시는 거예요?

경비 아저씨: 아까 아저씨가 혼자 계시고 그 윗집에서 소음이 들린다고 하시길래 (이 부분은 아까 언급한 내용이 아니었다.), 위에 연락 먼저 하고 저랑 아주머니랑 윗집에 같이 가려고 연락을 한 거예요.

나: 저는 윗집에 간다고 얘기한 적도 없고, 윗집에 가서 말하고 말고 할 사이도 아니고, 우리 집 오셔서 들어 보시라고 한 건데 윗집에 연락을 미리 하시니 참 황당하네요.

경비 아저씨: 일단 지금 거기로 갈게요.


(밤 11시 직전에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잠옷 위에 이불처럼 생긴 가운을 걸쳐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작년 12월에 층간 소음 때문에 오셨던 키 작은 경비 아저씨였다. 경비 아저씨와 나는 아까 인터폰에서 했던 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비 아저씨는 혼자 위층에 올라가셨고, 나는 현관문을 살짝 열고 위에서 나는 소리를 들어 보니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그 키 작은 경비 아저씨는 다시 우리 집으로 내려와서, 거실에 아저씨 혼자 있었고, 집에 혼자 있는데 억울하다며 시뻘건 얼굴로 소파에 씩씩 거리며 앉아 있었단다. 나는 그래서 "그 집 위층에서 소음이 들렸나요?"라고 물어보았더니, 경비 아저씨는 "윗집 아저씨랑 얘기한다고 잘 못 들었어요."라고 하셨다. 그리고 윗집 아저씨 말로는 180만 원을 들여서 매트를 깔았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아저씨께서 직접 매트를 보셨나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대답을 얼버무리셨다. 아마도 경비 아저씨가 우리 집 오시기 전에 윗집에 먼저 연락을 했던 점,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었을 때 경비 아저씨와 윗집의 대화가 분명 밖에서 들렸던 점, 경비 아저씨와 윗집의 대화에 여자 목소리가 들렸던 점, 그리고 윗집에서 낮에 청소기를 두 번이나 돌린 점 (거실에 매트를 다 깐 상태에서 청소기 돌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하루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돌렸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동에 하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가 경비 아저씨가 처음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우리 위층에 멈춰 있었다는 점 등이 석연치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왜 위층에 서 있었을까? 경비 아저씨가 위층을 먼저 방문했다가 계단으로 내려와 우리 집에 오셨다는 뜻인가? 아니면 경비 아저씨가 그리 낮지도 않은 우리 집을 계단을 통해 오셨고, 우리 위층의 방문객은 그 집 방문 이후 집을 떠난 적이 없다는 말일까? 그리고 설령 윗집 아저씨가 거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고 한들, 아저씨가 윗집에 연락을 하고 우리 집에 먼저 와서 시간을 버는 동안 위층 방문객들이 충분히 그 집을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이었고, 또 경비 아저씨가 그 집 방들을 일일이 확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매트를 깔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음 매트를 깔았다고 집안을 막 뛰어다녀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거의 12시간을. 버퍼 된 둔탁한 소리도 상당히 신경 쓰인다. 아무튼 경비 아저씨와 별 진전 없는 얘기를 나눈 후, 석연치 않은 기분에 나는 계단을 통해 내가 사는 층보다 두 층 위에 가 보았다. 현관문 앞에는 택배가 두 개나 와 있었다. 택배가 올 때마다 알림이 오는데, 사람이 집에 있다면 그 늦은 시간까지 택배를 문 앞에 뒀을 리가 없었다.


(경비실에 또 연락을 했다. 나도 내가 왜 이리 집요한지 알 수 없지만, 매번 오리발 내미는 위층 사람들과 아주 작정을 하고 윗집을 돕고 있는 경비 아저씨가 괴심했다. 인터폰 신호음이 갔다.)

나: 제가 방금 위 위층에 갔다 왔는데, 거기에는 택배가 두 개나 문 앞에 있는 걸로 봐서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다음에는 장갑이라도 끼고 가야겠다. 지문을 여기저기 남기고 다니니 두 층 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용의자 선 상에 오를까 걱정이 된다. ㅋ)

경비 아저씨: 아, 위 위층에 다녀오셨어요...


그렇게 시간이 약간 흐르고 12시가 되었고, 다시 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귀마개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 아침 뛰는 소리는 오전 8시 반경부터 시작되었다. 오전 9시 반 직전에 소음의 발생지가 위층인지 위 위층인지 알아보려 계단을 통해 또 올라가 보았다. 위 위층 택배는 안 보였다. 그렇다면 위 위층 사람들은 새벽에 들어왔거나 전날 일찍 잠이 들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위층에는 익숙한 청국장 냄새가 났다. (그 집에서 나는 냄새가 어쩐지 그 집 사람들을 닮은 것 같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또 거실에 쿵! 하는 굉음을 시작으로 뛰는 소리는 오후 1시가 다 되어갈 때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3시간 반을 인내하고, 그 이후 한 시간 반 동안은 합법적인 침묵의 대응을 했다. 위에서 뛰는 소리가 날 때마다 나도 즉각 즉각 반응을 보냈다. 그 이후 뛰는 소리는 없어지고 대신 온갖 종류의 기계음이 났다. 그리고 저녁 8시 다시 쿵! 하는 굉음을 시작으로 뛰는 소리는 시작되었다.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신경 거슬리는 후렴구가 많이 들어간 팝송이 나왔다.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나는 소리를 대략 10배는 키웠다. 내 육체를 피곤하게 하지 않고 오로지 소음으로만 대응할 수 있었다. 라디오 위치를 천장에 되도록 가깝게 옮겼다. 그리고 10시까지 크게 라디오를 들었다. 이후 10시 정각에 볼륨을 낮췄다. 우리 아파트 공고문에 "저녁 10시 이후에는.."으로 준수해야 할 사항들이 여럿 기재돼 있는데, 그 조항을 이용한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게 말이 되는가? 그럼 10시 이전에는 애들이 뛰어다녀도 되고, 세탁기 등을 돌려도 되고, 온갖 잡소리를 내도 된다는 소린가? 분명 겨울에는 해가 짧고 고로 사람들 수면 시간이 앞당겨질 텐데, 굳이 저녁 10시 이후로 시간을 정한 것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나도 그 규정에 맞춰 볼륨을 조정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볼륨을 줄이자마자 곧바로 뛰어다니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빌어먹을 놈들! 다시 볼륨을 키웠다. 이후 뛰는 소리가 줄어들었고 나도 볼륨을 다시 줄였지만 여전히 천장 가까운 곳에 라디오를 두고 들었다. 윗집 사람들이 자신이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특히 저녁시간에) 고통을 알려주고 싶었다. 하필 주말이라 내가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으니,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후 10시 알람을 하나 추가했다. 앞으로 윗집은 뛸 때마다 시끄러운 라디오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밤늦도록 들려줄 것이다. 어차피 나는  집 덕분에 항상 귀마개를 끼고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라디오 때문에 내 수면에 피해가 올 일은 없다. 나는 2년 4개월을 <괴롭다!>라는 연약한 호소만 했지만, 이제 나를 괴롭게 하는 그들에게도 지옥의 맛을 보여줄 것이다.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을 항상 들어야 하는 그 고통을 당해 보기 바란다. 나는 합법적으로 나의 정신 건강을 지키휴식할 권리를 되찾을 것이다. 독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인데, 좋게 말할 때 알아듣지... 불쌍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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