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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r 24. 2021

출아파트기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이야기

사람과 집 사이에도 궁합이라는 것이 있을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나와 안 맞아도 정말 너무 안 맞는 것 같다. 이야기의 시초는 이사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산 아파트라 앞으로 여기저기 이사 안 다니고 내 집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윗집이 일 년에 수도 없이 제사를 지내고, 제사 때마다 친척들이 들이닥치는 집이라는 걸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리고 출가한 자식 내외가 아이까지 데리고 일주일에 반 이상을 그 집에 머무는 것도 당연히 알지 못했다. 게다가 작년 코로나 사태 이후로 그 아이는 그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실 그 집에 몇 명이 살건 아이가 몇 있건 내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문제는 그 집 사람들이, 그 집을 방문하는 아이들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내질 않는다는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윗집에서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새벽 여섯 시부터는 절구통 찧는 듯한 소리를 한 시간 가량 쉬지 않고 나에게 들려주었었다.


이사 날짜가 잡힌 요즘 소음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순간순간 짧은 욕을 주문처럼 뱉어버리고 만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에 경비실 사람들에게 몇 번 당한 이후로, 요새는 아예 경비실에 연락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지방은 아주 보수적인 곳이고, 텃새 또한 만만치 않다. 시골의 텃새야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아파트에서 텃새라니... 그런데 당해보니 정말 그런 게 있더라. 입주한 지 오래된 입주민이, 온갖 행패를 부려도 경비실 사람들마저 그쪽 편을 든다. 이곳에서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그리고 오늘 밤 9시가 지나서 경비실 직원과 낯선 사람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밤늦은 시간에 갑작스러운 방문이라 의아했다. 급하게 잠옷 위에 코트를 걸치고, 마스크를 꺼내 썼다. 경비원 아저씨 옆에 있던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하는 말이, 엘리베이터에서 우리 집 개와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이년 반이 지났고 런 얘기는 처음 들어 보았다. 그게 밤 9시가 지나서 경비 아저씨를 대동해서 남의 집에 쳐들어 야 할 만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불편하다니 미안하다고 말은 하고 보냈다.


개한테 물린 것도 아니고, 개가 덤벼들며 짖은 것도 아니고, 상처를 낸 것도 아니고, 목줄을 안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배변을 치우지 않는 것도 아니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다고... 그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방법밖에 없지 않은가?


어쨌거나 이미 충분히 불편한 이 아파트에 불편한 점이 하나 더 늘었다. 남에게 민폐 주는 걸 아주 싫어하는 나인데, 다른 사람이 우리 개로 인해 괴롭다고 하니 사실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사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고 있는데, 굳이 나를 찾아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경비 아저씨 또한 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경비아저씨들이 항상 <을>의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상한 경비 아저씨들을 몇몇 보았다. 특히 이곳 경비 아저씨들은 남편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는 나를 아주 만만하게 보는 듯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에 기한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 나는 이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끔찍이도 싫었다. 이곳에서 맺은 모든 인연 또한 이사와 동시에 끝이 나길 바란다. 악몽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파트 값이 올라서, 그동안의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챙긴 듯한 기분이 든다. 소음과 이상한 이웃들과 더 이상한 경비 아저씨들에 지쳐 용기를 내어 이사 결정을 하길 정말 잘했다 싶다.  


하지만 다시 가는 곳도 아파트다. 전원주택은 그림의 떡이었다. 운전해서 직장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전원주택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출퇴근 십 분 거리에 이제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주택도 섣불리 살 수 없었다. 나중에 되팔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 남의 발 밑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좀 더 춥고 좀 더 덥더라도 트하우스로 가야겠다. 그리고 이런 거지 같은 이야기를 다시 쓰지 않아도 되는 날이 곧 올 거라는 행복한 기대감으로 인해 그동안 내 맘을 짓누르던 통증이 잠시 멎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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