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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Feb 21. 2021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쓸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쓰고 싶지 않았다. 글이 나를 떠난 것일까? 내가 글을 떠난 것일까? 삶이 시궁창 같았다. 매일이 전쟁의 연속이었다. 소음과의 전쟁.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통하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내 머리 위에서 노는 그들을 당할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집을 내놓았다.


집을 내놓기까지, 나의 삶은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드라마를 진통제 삼아, 음악을 수면제 삼아, 술을 마취제 삼아 살고 있었다. 중독자처럼. 환자처럼. 폐인처럼.


그러다 집을 내놓고, 내놓은 지 십 일만에 구매자가 나타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파트 값이 미친 듯이 올랐다. 이런 때 아파트를 내놓아서, 의도치 않게 수익이 생기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옮길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한국을 떠날까 생각도 했었다.  그동안 내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짐승 같은 인간들이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머물기로 했다.


전원주택을 알아보았다. 집도 집이지만 정원이 아주 예뻤다. 그래 봐야 고작 0.3 에이커 정도였다. 문제는 직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차로 한 번에 한 시간 정도 되는 길을 출퇴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광고에 나온 30분이 넘는 비디오를 보고 또 보고 몇 번을 보았지만 약속을 잡지는 않았다. 섣불리 집을 보았다가 마음만 아플 것이었기 때문이다.


도시 내에 있는 단독주택도 알아보았다. 가격이 맞지 않거나, 지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게다가 대부분이 마당도 주차 공간도 없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역시 아파트만큼 되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명백한 판단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머물지 모르겠지만, 종국에는 모든 짐을 다 꾸려서 떠나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다시 아파트를 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소음을 견딜 수는 없다. 맨꼭대기 층만 보았다. 가격도 맞아야 했다. 이번에는 빚을 내서까지 장만하고 싶지 않았다. 혼자서 대출금 몇 백씩 갚으면서도 한 달에 몇 백씩 저축해 왔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빚을 갚기 위한 삶은 싫다. 빚지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가격에 맞는 맨 꼭대기 층을 찾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몇 개 안되었다.


그리고 딸랑 두 군데를 보았다. 예전에 남편에게 처음 본 차를 덜렁 샀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 놓고, 나도 처음 본 아파트가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그곳에 짐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집을 보여주는 듯 마는 듯 나를 재촉하더니, 다른 층 아파트를 자세하게 보여주었다. 맨꼭대기 층이라는 것은 큰 위로가 되었다. 게다가 경치가 아주 좋았다. 360도 각도에서 산이 보였다. 더 많이 보이는 데도 있고, 더 적게 보이는 데도 있었지만.


두 번째 본 아파트는 인지도가 꽤 높은 아파트로 다시 빚을 내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곳이었다. 맨꼭대기 층이었지만, 뷰는 꽝이었다. 360 각도에서 다른 아파트가 보였다. 거리도 그다지 가깝지 않았고, 크기도 지금의 아파트보다 살짝 작았다. 집을 볼 때 집주인 앞에서 집이 맘에 드냐는 질문을 중개인한테서 받았을 때 너무 난처했다.


그날 첫 번째 본 집에 구매의사를 밝히며, 집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면 구매 전에 수리를 해 달라고 했다. 가격도 흥정을 해 보려다가 집주인이 자신의 구매가보다 낮게 내놓은 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그런데, 중개인이 가격을 굳이 조정을 해서 AS IS라는 조건을 걸었다. 나중에 알아낸 것이, 일전에 옥상에서의 누수가 있었고 지금은 옥상 누수를 수리했다는 것이다. 어렵게 전문가를 모시고 그 집을 다시 보러 갔다. 거실 외에도 베란다 쪽 누수 피해 흔적이 있었다. 내부 수리는 안 한 상태였다. 전문가에게 이런 집을 사도 되겠는지 조언을 구했지만, 직설적인 답을 피했다. 아니 아마도 내가 제대로 듣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가계약을 했다.


소음이냐 누수냐?! 물이 샌다는 것 또한 참 고통스러운 일임을 안다. 하지만 모든 아파트는 누수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라는 억지스러운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물이 샜다는 것을 알고도 굳이 계약을 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꾸짖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더 이상 소음에 시달릴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지고 갈 수 없거나, 가지고 가서 결국 버리게 될 것,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격을 매겨서 내놓았다. 조금씩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회복되어 가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방황 중인 것일까?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회복에 가까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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