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 종일 당근을 한다. 지난 주말은 장롱 처분하느라 무척 바빴다. 금요일에 아껴둔 장롱 하나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와서 가지고 갔다. 그리고 남아 있는 장롱 두 개를 중고 거래 앱에서 끌어올렸더니 일요일 오후에 누가 와서 가져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토요일은 옷장에 있는 물건을 치우느라 바빴다. 옷장에 있는 옷을 다 빼내어 헹어에 걸고, 걸 수 없는 옷은 탁자 위에 임시로 쌓아 올렸다.
일요일은 비가 구질구질 내리는 하루였는데 다행히 장롱 픽업 시간에는 오지 않았다. 약속 시간이 한 십 분쯤 지났을 때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그런데 장롱이 아무래도 가지고 온 차에 안 실릴 것 같다더니 그냥 가 버렸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그럼 두 개 중 하나라도 가지고 가든지 아님 다른 차를 구해 오겠다고 하든지... 둘은 옷장에서 옷 빼느라 전날 내가 진 뺀 것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그날 오후를 다시 옷장에 옷 집어넣는 걸로 허비했다.
그 일이 있고 속도 없이 나는 또 당근에 올라온 물건들과 광고를 보았다. 동네 생활이라는 코너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니, <같이 어디 가자!>라는 류의 글이 많이 있었다. 심지어 <친구를 구한다!>라는 글도 있었다. 주로 자신의 나이와 성별을 밝혔는데, 나는 '한국 문화상 나이 공개를 필수적으로 하나 보다!'라고 약간 의아해하면서도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한번 따라 해 보았다. 일 마치고 같이 산책할 여성분을 찾는다는 글이었는데, 내용을 입력하기 전에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밝히라는 당근의 안내문이 있었다. 그래서 내 나이대와 성별을 밝히고, 산책 동무는 이십 대 이후의 여성들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내 판매글에 같이 운동하자는 챗을 보낸 것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동네 생활이 아니라 개인 판매 채팅에 문자를 했을까? 그곳에 계속 문자가 왔는데, 자신이 삼십 대라고 밝힌 그녀는 내 나이를 물었다. 또 이상했다. 분명히 내가 사십대라고 밝혔는데, 그리고 내 나이가 왜 그리 중요할까 싶었다. 그다음 질문은 "결혼했어요?"였다. 거짓말에 소질이 없는 나는 또 고지 곧대로 "네, 결혼했고 애도 둘이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가 오가고 아무래도 수상해서 상대에 대해 좀 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당근 가입한 지 겨우 한 달 되었고, 구직 광고를 하고 있었다. 투잡이 필요할 수도 있고 (아니 어쩌면 무직일 수도 있겠다.), 또 당근을 오래 했든 최근에 했든 무슨 상관이겠냐 싶었다. 어차피 그냥 산책이나 같이 하자는 것이니까. 그런데 다음 문자에 갑자기 자신이 "남자"라는 거다. 그래서 <저는 유부녀라 외간 남자와는 산책이 어렵습니다>라고 잘랐다. 이번에는 그 남자가 자신의 근육 사진을 보냈다. 그래서 계속 열심히 운동하시라고 하고 채팅방을 나왔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에 "누나, 심심할 때 문자 주세요!"란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결국 그를 앱에서 차단시켰다.
내가 정말 심심해서 정신이 나갔나 보다. 차라리 드라마를 20편 이상 볼 때는 이런 황당한 일은 없었다. 얼마나 사정이 딱하면 나이나 기혼 여부 등 아무것도 안 가리고 들이밀까 싶었다. 그렇잖아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갑자기 소득이 줄어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한시적으로 50만 원을 지원한다>는 광고를 보고, '50만 원으로 어떻게 한 달 생활비가 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퇴근 후에 바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내가 너무 세상 물정에 어두워 허튼짓을 한 것이다. 이제 물건 파는 것도, 나누는 것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동네 생활도 질린다.
"당근아, 미안해! 우리 이제 서로 시간을 좀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