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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y 22. 2021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덜 슬프진 않았다

전에 다른 글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듯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3년 전, 우리 가족은 뉴욕으로 여행을 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 함께한 가장 최근의 여행이었다. 우리 가족이 뉴욕에 있는 동안 센트럴 파크를 여러 번 지나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개 한 마리, 개 두 마리, 개 세 마리, 심지어 한 명이 개 네다섯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곧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아빠와 오빠와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딸은 아빠와 오빠의 빈자리를 강아지로 채워야겠다고 결심이라도 한 듯, 우리 가족이 뉴욕, 워싱턴 디씨, 버지니아 등을 여행하는 내내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고 나는 계속 고민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이곳으로 이사를 오기 삼일 전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서 강아지 한 마리를 샀다. 페북에서는 분명히 토이푸들이라고 광고를 해 놓고, 데려 온 강아지는 토이푸들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알고 보니 엄마가 골든 두들이었다. 강아지와 우리는 같이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강아지를 전적으로 돌본다고 약속했던 아이는 매일 산책을 시키지도 배변 훈련 등 강아지에게 필요한 훈련을 시키지 않았고, 나는 인내력에 한계를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강아지는 입맛이 까다로워 밥을 잘 먹지 않았다. 처음에는 강아지 혼자 집에 두었더니, 일 마치고 집에 오면 집이 개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외출하는 시간에는 케이지에 두었다. 하지만 강아지 훈련도 너무 힘들고,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지내는 것도 안쓰러워서 입양 보낼 곳을 알아보았더니,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산에 있는 강아지 유료 요양소를 알게 되었고 2년 전 이맘때 그곳을 방문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약속된 곳으로 가서 음산한 지하에 두 개의 출입문을 통과한 후, 그곳 매니저를 만났다. 그곳에는 주로 고양이들이 많았고, 강아지 서너 마리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입소 절차로 리 불안 테스트, 건강 검진 등등을 마친 후 입소 상담을 진행하던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로 자꾸 입소 가격을 상향 조정했고, 나는 강아지를 데리고 그곳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간 코로나가 있었고 아이가 하루에 두 번씩 산책을 시켜 강아지 배변 훈련은 확실히 되었지만, 강아지는 여전히 겁쟁이였고, 딴에는 주인을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우리를 항상 더 난처하게 했다. 두 달 전 엘리베이터에서 강아지를 마주쳐서 엄청 놀랐다며 9시가 지난 시간에 경비 아저씨를 대동해서 9층에 사는 여자가 쳐들어 온 이후로, 나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강아지 산책을 시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잠 많은 사춘기 아이가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이는 학교 마치고 집에 와서 산책을 시켰다. 9층 여자를 안 마주치려면 늦은 산책은 피해야 했다. 그런데 지난주 새벽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강아지가 엘리베이터 밖 왼쪽 사각지대에서 갑자기 밀고 들어오던 어느 할머니를 마주치고 둘 다 놀라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던 이후, 강아지에게 입마개까지 하고 새벽 산책을 했다. 동상처럼 굳어 있던 할머니를 본 것이 나에게도 큰 트로우마였다.


그리고 며칠 전,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하루 종일 신경을 썼더니 내 어깨와 뒷목이 너무 아팠다. 그다음 날은 점심을 거르며 종일 일하다가 집에 오니, 집안 가득 역겨운 냄새가 났다. 개가 케이지 안에서 변을 본 것이었다. 딸에게 그 똥을 치우게 했더니 그새 개는 바닥과 현관에 설사를 했다. 딸이 개를 산책시키고 오는 동안 냄새나는 개 설사 똥은 내가 치워야 했다. 한 번도 개가 이렇게까지 한 적이 없었기에 걱정이 되어 동물병원에 연락을 했더니 내원하란다. 종일 제대로 못 먹은 데다가 어깨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지만 늦은 저녁 속을 헤집고,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서 설사 멎게 하는 주사를 맞히고 설사약을 받아왔다. 평소 시간이 없어서 내 몸도 챙길 수 없는 내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개 산책시키고 게다가 종일 굶고 아픈 몸으로 설사병 난 개를 병원에 데려가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너무 어이가 없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산 유료 요양소에 입소시키러 간 지 2년 후 나는 결국 다시 이 지역에 있는 유료 요양소를 알아보았다. 어쩐지 개와 같이 사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수명은 점점 줄어들 것만 같았다. 주말 4시에 약속을 잡았지만 낯선 곳이라 혹시 길을 잃고 헤맬 것에 대비해 일찍 나섰고, 우리는 예약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지하도 아니고 1층이라 음산한 기운도 없었다. 매장 바로 쪽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새끼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유리 상자 속에 진열된 것이 여느 펫 스토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매장 안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애완용품이 진열된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40분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직원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모두 자기 할 일로 분주해 보였다. 약속 시간이 15분이나 지난 후에 직원 중 한 명이 말을 걸어왔고, 또 대략 5분이 지난 후에야 그 가게에서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 입소 신청서를 들고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왔다. 부산에서의 경험을 통해 큰 액수를 요구할 거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말 만만치 않은 액수였다. 기본요금이 개 나이 한 살당 40만 원이라  120만 원인데다가 믹스 종이라 30만 원 추가, 게다가 산책, 미용 등의 관리비가 80만 원 합계 230만 원을 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금액이 아무리 커도 이번에는 다시 강아지를 데리고 그곳을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기 때문에 입소비를 지불했다.


요양소를 나와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한참 아무 말이 없던 아이가 차에 탄 후 울기 시작했다. 나는 멋쩍은 위로를 하고 집에 와서 남아 있는 강아지 용품들 사진을 찍고, 가격을 메겨서 팔려고 중고 마트에 올렸다. 강아지를 요양소에 입소시키려 데려갈 때, 한 번도 못 입혀 본 여름옷 네 벌과 현재 먹고 있는 사료를 스토리지 백에 한 가득 그리고 아직 안 쓴 장난감, 치약과 칫솔, 그리고 아직 못다 먹은 약 등등을 챙겨 강아지와 함께 그곳에 두고 왔다. 그런데 강아지 사료통에다가 남아 있는 사료를 가득 붓고 나니 갑자기 목이 메어오기 시작했다. 좀 무거워도 강아지 사료를 다 가져다 줄 걸 잘못했다 싶었다. 결국 아이에게 내 눈물을 들키고 말았고, 우리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침은 브런치를 시켜 먹었고 점심은 강아지 데려다 주기 전에 라면을 먹었는데,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안 먹은 탓인지 계속 쏟아낸 눈물 탓인지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슬플 때는  달달한 걸 먹어야 하는 법. 저녁은 디저트 가게에서 음료와 디저트를 시켰다. 얼마 후 배달 기사가 초인종을 눌렀고, 초인종 소리가 났지만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아이는 또 울었다.


강아지를 입소시키지 않았다면 새로 이사 간 아파트에서 같은 동에 사는 새 이웃들에게 나는 이런 쪽지를 돌려야 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호에 새로 이사 온 사람입니다. 우리 집에는 겁 많은 중형견이 있는데, 새벽과 늦은 오후 시간 이렇게 하루에 두 번 산책을 니다. 혹시 우리 개를 마주치더라도 겁먹지 마시고 차분하게 계셔 주시면 개가 놀래서 짖거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도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아울러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더라도 침착하게 행동해 주시길 거듭 부탁드립니다."


이제 이런 쪽지를 돌릴 일은 없어졌다. 이곳에 같이 온 강아지는 우리보다 일찍 이곳을 떠났다. 이사 간 곳에서 강아지 때문에 앞으로 이웃과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심 두 달 전 밤늦게 우리 집에 찾아왔던 9층 여자; 새벽에 보이지도 않는 벽 옆에 서 있다가 문 열리자마자 밀고 들어 오려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강아지와 마주쳤다가 사색이 된 그 할머니; 그리고 몇 해전 멀리서 놀러 온 친구들과 강아지 데리고 새벽에 산책하러 가는 길에, 어린애 데리고 건물 밖에 있다가 그 애가 우리 강아지를 보고 갑자기 기겁을 하니 나한테 "애 놀라게 한 것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버럭 화내던 그 할아버지; 그리고 또 몇 해 전 강아지 데리고 동물 병원 가던 길에 맞은편에서 오던 할머니가 우리 강아지와 마주치고는 나에게  "고소하겠다"라고 화내던 ... 그 모든 사람들... 우리 강아지가 결국 입소돼서 다들 행복하신가요? 우리는 비록 눈물 흘리지만 당신들은 미소 짓기를 바랍니다. 꼭 작아야 애완견은 아닙니다. 헤어진 우리 강아지에 비하면 당신들은 더 몸집이 큽니다. 강아지에게 당신은 더 크고 무서운 존재입니다. 강아지가 짖는 것은 그런 당신들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다가오는 당신들이 무섭기는 강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에 헤어진 우리 강아지처럼 소형견 이상의 개를 보시면 본인이 무섭다고 호들갑 떨면서, 견주와 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저는 입소비를 감당할 수 있어서 개를 길에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당신들의 편견과 무례한 한 마디 한 마디가 견주와 강아지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리고 멍멍아,

2년 전 부산에 너를 두고 왔어야 했는데, 모질지 못해 널 데리고 와서 결국 이렇게 이별을 하는구나! 우리와 함께한 지난 3년이 너에게 행복한 시간이었길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너의 일생을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에 하루라도 빨리 우리를 잊어줬으면 좋겠다. 우리 목소리도, 냄새도, 얼굴도 모두 잊으렴! 그리고 좋은 집으로 가서 네가 눈 감는 순간까지 새 주인과 오랫동안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도할게!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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