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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y 23. 2021

부부 싸움 중 우연히 발견한 아들의 재능

남편과 아들이 미국으로 떠난 지 어언 2년 10개월 그리고 남편과 아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어언 1년 5개월 전이다. 우리 부부는 그러니까 견우와 직녀보다 조금 더 불쌍한 일 년 반 만에 겨우 한 번 만나는 부부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반년에 한 번은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여행에 관한 규정이 시시각각 바뀌고, 또 둘 다 직장에 메인 몸이다 보니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그런 여행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공식적인 부부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화상 통화를 길게 하며 그간 쌓인 이야기를 나눈다.


아들과 외식을 한 후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남편이 나에게 화상 통화를 걸었고, 우리는 평소처럼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내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며 다음에 통화하자고 말한 후 끊으려고 하니, 남편이 "다음 달에 미국에 오기는 오는 거냐?"며 묻는다. 그래서 "가야 되니까 가야지!"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내가 미국 오는 것에 대해 시큰둥하게 대답한 게 서운해서 버럭 화를 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태산이라 다음 달 미국 가는 거에 대해서 기뻐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말했고 그 이후로 본격적인 부부 싸움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둘이서 누가 질세라 상대의 말은 하나도 듣지 않고 동시에 서로 자기 할 말만 했다. 꼭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그리고 둘이 정말 피해야 하는 주제에 대해 (특히 언쟁 중에) 말하게 되었고, 나는 "그럴 거면 다음 달 미국 안 갈 테니 그렇게 알아!"라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대략 10분 후 아들에게서 영상 통화가 왔다. 아들은 아빠랑 무슨 일 있냐고 물었고, 처음에는 나더러 양보하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중에 내 말을 다 들은 아들은 나에게 꽤 어른스러운 조언과 위로를 해주었다. 아들은 어느새 사람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의젓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동생이 갓 태어났을 무렵 내가 갓난아기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소파  뒤에서 "엄마 나도 여기 있어요!"라고 하던 조그마한 아이가 벌써 성인이 된 것이다. 아들과 대화를 마치고 나니 이번에는 딸이 방에서 나왔다. 방 안에서 열심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던 딸은 남편과 내가 전화로 다투는 걸 어찌 알았는지, 엄마가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고 다. 자기는 친구들이랑도 그렇게 유치하게 싸우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리고 딸은 엄마하고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유치한 부모일 거란다. (아이들이 네 살 터울이라 사춘기가 동시에 안 온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어떻게 얄미운 말만 잘도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과 말을 하고 나니 어느새 기분이 풀려서 남편과 다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은 얘기로는 남편이 처음 나와 통화를 마치고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본인이 화가 나서 집 밖으로 나갔더니, 아들이 아무 말 없이  자기를 뒤에서 꼭 안아 주더란다. 첫째라고 항상 동생에게 양보하고 동생을 보호하도록 키웠더니, 아들은 남의 마음과 기분을 잘 알아차리고 우울한 마음을 위로하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아들은 문득 자신이 사춘기 때 말 잘 안 들었던 것에 대해서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가 더 멋진 아들이 못 돼서 미안하단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아들아, 너는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야! 엄마는 네가 이루는 크고 작은 성공들이 모두 자랑스럽단다! 너에게 이런 말 더 일찍 그리고 자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는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지금의 네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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