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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y 31. 2021

집순이의 탄생

이사했어요!

아무래도 앞으로 집순이가 될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잔금을 마친 날 청소업체를 불러 이사 청소를 했다. 지난번에는 남편과 내가 삼일 밤낮으로 청소를 했지만, 시간이 곧 돈인 세상에 시간을 벌기로 결심했다. 이사 청소 후기에서 별별 이야기를 다 보았기 때문에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다음  이사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체력 소모를 가능한 한 줄여야 했기 때문에 업체에 연락을 한 것이다.  잔금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9층 여자를 보았다. 침을 뱉어 주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고 고스팅 하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잔금을 치르고 이사 청소를 마치고, 이사 가기 전 마지막 밤, 윗집에서는 여전히 망치질을 시작했고 소리는 점점 커졌으며 한 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아무래도 윗집 할머니가 망령이 들었나 보다. 그날밤 늦게 들어오는 윗집 할아버지를 주차장에서 보았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고 나는 잠시 건물 밖에 서 있었다.


딸의 표현을 빌자면 "소풍 가기 전날 밤 아이처럼" 나는 설레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이사 트럭이 오길 기다렸다. 디어 이사 트럭이 도착했고, 본격적으로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포장하는데 대략 네 시간이 걸렸고, 이삿짐 직원들이 점심 휴식 시간을 갖는 동안 나는 떠나는 집에서 청소와 폐기물 처리 등의 마무리 작업을 했다. 점심 식사를 하러 가기 전 열심히 청소하는 나를 보고  이삿짐 직원이 집이 안 팔렸냐고 물었다. 그래서 집은 팔렸는데 제가 쌓아 둔 먼지까지 남기고 갈 수가 없어서 치운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살던 데에서도 나는 청소를 하고 나왔다. 이삿짐을 다 내리고 팀장에게 식사 후 팀원들과 모두 같이 후식 드시라고 일인당 만원씩 계산해  드렸는데, 아무래도 후식은 생략하신 듯했다. (그런데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다음에는 차라리 일 마치고 일인당 따로 팁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시국에 집에서 점심을 시키기도 간식을 준비하기도 참 애매해서 그냥 생수를 준비한 걸로 조촐한 대접을 대신했다. 짐을 푸는 것도 대략 네 시간 정도 걸렸다. 직원들은 모두 지쳤고, 빨리 짐을 풀고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였다. 나는 그날 밤늦게까지 정리를 했고, 그다음 날도 새벽부터 자정까지 집 정리를 했다.


이틀을 꼬박 늦게까지 일하고 나니 삼일째 되는 날은 몸이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안방 화장대와 욕실 정리를 마저 해야 했다. 그러다 문득 있어야 할 물건들이 여러 개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그중에 미국에서 목사가 된 지인이 나에게 준 가방들은 대체 불가한 물건들이다. 진품인지 모조품인지 알 수 없는 가방들로 만약 진품이라면 아마도 내가 소장한 물건들 중에 가장 값나가는 것들일 것이다. 이삿짐센터에 연락을 했더니 늦은 오후에 이사를 도왔던 팀장이 찾아왔다. 빈손이었다. 그래서 둘이서 같이 물건들을 찾아보니, 옷장 속 내가 유일하게 정리하지 않은 물건들 속에서 가방 두 개를 찾았다. 진품이라면 가방들에게 참 미안한 일이다. 다른 물건들은 찾지 못해서 결국 화장품이며 비누 등등은 다시 구매를 했다. 하지만 가방들을 찾아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이삿짐 직원을 만나기 전에는 대출받은 은행에 마지막 인사도 할 겸 마지막 서류도 건넬 겸 찾아갔다. 은행 직원들 간식으로 산 여러 종류의 빵과 음료수 여덟 잔이 너무 무거워서 팔에 없던 근육이 생길 것만 같았다. 다행히 쌀쌀맞던 대출 직원이 아주 고마워했다.


아직 짐 정리는 한참 더 걸리겠지만, 삼 일간 앉아 쉴 시간도 없었지만, 나는 이곳이 너무 좋다. 이곳에서 보이는 뷰는 밀리언 달러의 가치가 있도, 이제 머리맡에서 들리는 소음은 없다. 거실 창가와 안방에 각각 커피 테이블을 두었고, 거실에는 책장 가득 책을 꽂았다. 홈카페 설정이다. 연결된 두 개의 책장 위에는 작은 장독들을 그리고 안방 베란다에는 중간 크기의 장독들을 놓았다. "나가라 일터로 나에겐 빚이 있다!!"라고 적힌 종이도 떼어와서 안방 옷장 위에 다시 붙였다. 앞으로 일 년간 빚을 다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겠지만, 이제 빚에 쫓기는 절박함은 사실 없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는 이미 이곳이 너무 좋고 편안했다. 밀리언 달러 뷰와 소음이 없는 곳, 이곳은 나에게 지상 낙원이다. 아마도 나는 행복한 집순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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