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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n 03. 2021

호텔 같은 아파트에 살아요

행복지수 200

층간 소음으로 삼 년 동안 고생하다가 결국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했다. 소음에 하도 지쳐서 가격대도 맞아야 하지만 층간소음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흔히 탑층이라고 불리는 맨 꼭대기층 아파트를 사게 됐다. 내가 지난번 아파트에 이사 갈 무렵 지어진, 그러니까 아직도 꽤 새 아파트로 전망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다. 이 도시에서 두 번째로 큰 산이 한눈에 다 들어올 뿐만 아니라 내가 지난 십 년간 근무한, 산 아래에 위치한 직장도 보인다. 게다가 위에도 옆에도 아무도 살지 않는 소위 펜트하우스이다.


새옹지마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전화위복의 희망이 담긴 말이라서이다. 내가 지난 삼 년간 층간소음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나는 굳이 펜트하우스를 찾지 않았을 것이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만족감과 평온함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사한 지 채 일주일도 안되었지만, 아직 짐 정리조차 다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지난 주말 삼일 밤낮으로 짐 정리를 하면서도 이번 주 일 마치고 집에 와서 다시 늦게까지 짐 정리를 하면서도 몸은 지쳐서 잠이 들어도 마음만은 황홀했다. 내가 마치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도 기쁘고 감사했다. 내 피부톤마저 밝아진 듯했고, 직장에서 아무리 짜증스러운 일이 있어도 일 마치면 내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설렜다.


그리 넓지 않은 펜트하우스에서 사람을 위한 공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물건들을 하나둘 치웠다. 물건을 모셔 놓기에는 이 공간이 너무 아깝다. 가구든 유통기한이 지난 가공식품이든 하나씩 정리해나갈수록 내가 사는 곳이 점점 호텔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카페처럼 세팅을 하려고 거실 창가와 안방 베란다에 각각 커피 테이블을 두었다가 나중에는 안방 베란다를 장독대에게 양보해야 했다. 커피 테이블은 다시 안방으로 들어왔다. 지난번 이사를 결심하고 대형 장독대를 열 개나 처분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곳에는 그 큰 장독을 하나도 둘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이 왜 하필 호텔처럼 느껴질까? 아이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아이와 나의 공간이 철저히 분리돼 있고, 부엌과 거실을 공유하는 형태인데 아이도 나도 필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짧은 동선 내에서 손쉽게 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새집 느낌과 아름다운 전망 역시 십 년 전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 머물렀던 호텔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하나도 괴롭지 않다. 나중에 이곳에 익숙해지면 권태로움을 느낄게 될까? 지금 생각으로는 퇴직 후에도 이곳에서 계속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때 되면 아마도 다른 모험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냥 그만큼 이곳에서의 생활이 좋다는 거다.


사람을 위한 공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나는 계속 물건을 줄여 나가야 한다. 몇 달 후면 남편과 아이도 귀국을 하게 되었기에 공간 확보가 더 절실하다. 이 호텔 같은 아파트에 걸맞지 않은 잡다한 물건들을 계속 버려야겠다. 그것이 옷이든, 책이든, 살림살이든지 간에. 그리고 내가 너무도 갖고 싶은 식물들을 (이번에는 사실 큰 나무가 욕심이 난다) 위한 공간 확보도 너무나 절실하다.


지인들에게 십억짜리 전망을 가진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말했다. 남쪽으로 거실이 있는 우리 아파트 앞에는 작은 집과 작은 빌딩들이 있다. 그곳에 나중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우리 집의 십억짜리 전망은 아마도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면 이곳은 여느 아파트와 같이 평범한 아파트가 될 것이다. 그런 날이 오랫동안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삼 년간의 고생이 끝나고, 앞으로 긴 여름휴가와, 네 식구의 상봉 등 행복한 일들이 나를 기다린다. 쥐구멍에도 볕 뜰 날 있다더니, 역경을 이겨 내고 나니 나에게도 행복한 날들이 손짓을 한다. 여름휴가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남편과 아들과 떨어져 산 지 벌써 삼 년이 돼 간다는 생각을 하니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지,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들 견뎌냈는지 믿기지 않는다. 게다가 코로나로 자유롭지 못한 일상 속에서 지낸 시간이 일 년 하고도 삼 개월이다.  삼 년 사이 큰 아이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삼 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앞으로 삼 년이 더 지나면 아이들은 모두 우리 부부의 곁을 떠나고 결국 남편과 나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앞으로 삼 년 동안은 아이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 호텔같이 아늑하고 멋진 이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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