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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n 15. 2021

온라인 교육으로 시작하는 휴가

여름휴가 첫째 주 이틀째 되는 날은 온라인 교육을 받는 날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훌라후프로 하루를 시작했다. 티브이를 보며 훌라후프를 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 휴가철이라 교육은 직장이 아니라 집에서 개별적으로 받기로 미리 합의가 되어 있었기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번거로움은 없었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얼굴을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화장을 했다. 화장의 완성은 립스틱을 바르는 거라 붓까지 꺼내서 공을 들였다. 교육받는 환경이 산만하면 집중이 잘 안 되니 물론 온 집안 청소도 해야 했다.(예전에 학교 다닐 때도 그랬었다. 공부하기 전에 방청소, 책상 청소 등등으로 미리 기운을 다 소진하는 스타일이다.) 이런저런 일을 다하고 교육 시작 8분 전에 컴퓨터 전원을 켜고, 온라인 미팅 링크에 클릭을 했다. 그런데 평소 회사에서 사용하는 온라인 미팅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프로그램 다운로딩을 먼저 해야 했다. 프로그램 다운로딩을 하니 이번에는 로그인 아이디를 입력하란다. 사전에 받은 로그인 아이디가 없어 헤매던 중에 가까스로 미팅 링크에 접속이 되었다. 덕분에 미팅에 1분 늦게 도착했지만, 아직도 못 들어온 사람들이 있어서 교육은 잠시 지연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의 자료를 보기 위해서 회원 가입을 해야 했다. 이메일을 넣고, 로그인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만들고 다른 정보를 다 입력했는데도 불구하고 회원가입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원가입 절차 중에 '동의합니다' 밑에 "나는 로봇이 아니다"라는 항목이 들어가 있는데 그 문구가 내 화면에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을 닫고 모든 정보를 재입력해야 했다. 로그인에서부터 회원가입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게다가 진행자의 인사와 설명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야 하니, 시작이 그다지 순조롭지는 못했다.


교육은 온라인 미팅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하여 교육 진행자의 설명을 듣고, 정보는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의 메인 사이트에서 보고, 교육 진행 슬라이드는  상호작용이 가능한 다른 앱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때때로 그 메인 슬라이드 속에 있는 또 다른 무수한 링크들 클릭해야 했다. 그러다가 이인 일조나 삼인 일조로 팀을 나눠서 토의를 해야 할 때는 브레이크 아웃 룸을 통해 참여했다. 소주제나 교육활동은 10분에 한번 꼴로 바뀌었고, 컴퓨터 화면에 열어둔 창은 이미 너무 많았다. 게다가 교육 진행자, 컴퓨터 전문가, 교육 참여자의 타임존은 모두 달랐다.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은 세 나라에 흩어져 있었고  타임 존으로 나누면 다섯 군데나 되었다. 참여자들은 모두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다행히 교육 내용은 내가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서 덜 헤매었다. 10분에 한 번씩 바뀌는 소주제에 엄청난 분량의 정보를 소화해 내야 하니, 나에게 생소한 주제였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의견 교환을 하고 서류 등을 작성하는 것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방대한 양을 짧은 시간 안에 읽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정독을 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모국어로 된 내용이라도 그 시간 안에 읽기는 힘들 것이다. 평소에 수많은 업무 이메일을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그리고 나와 관련 없는 것으로 나눠서 얼마나 깊이 읽어야 하는지 결정하고 읽는 훈련을 한대로, 중요한 부분을 찾아서 읽는 식으로 짧은 시간 내에 내용을 파악해야 했다.


교육 시간은 오전에 세 시간, 점심시간 한 시간, 그리고 오후 세 시간으로 나눠졌다. 교육이 끝나고 다른 팀에게 피드백을 주고, 교육 진행자에게 피드백을 주고 났더니 이미 세시 반이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했다. 그래서 그동안 미뤄뒀던 산책을 하러 나갔다. 자주 가는 곳에 이르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지만 빗속을 걷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한 시간 가량을 걷다가 되돌아 집에 오는 길에 전통 시장에 들러서 떡을 샀다. 내일 또 온라인 교육을 받으려면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평소에 배우는 것을 즐기긴 하지만, 휴가 시작하자마자 교육에 참여하는 열성을 보인 것은 사실 몇 해마다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자격증 갱신에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 교육이 오프라인이었어도 난이도에는 사실 별반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내일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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