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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ug 21. 2021

집안일하다가 깨달은 삶의 진리

일이 시작되고 첫 주 마지막 날, 무조건 칼퇴근을 하겠다는 각오로 정신 무장을 한 채 일찍 출근을 했다. 그러니까 출근 시간보다 정확히 한 시간 반 일찍 직장에 도착했다. (나의 계산법은 이렇게 허술하다. 퇴근 시간 후에 한 시간 반을 더 있으나 출근 시간 전에 한 시간 반을 있으나, 한 시간 반 동안 추가 근무를 한 건 똑같은데, 어쩐지 퇴근 시간은 꼭 사수해야 할 것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해도 퇴근 시간 전에 미팅이 있으니, 일 마무리를 하느라 자연 퇴근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번 맞춰 두었던 멀티포컬 안경을 찾으러 가기 전에 밥을 먹었다. 눈이 더 나빠진 것 같다는 아이까지 데리고 안경점에 갔더니, 지난번 무뚝뚝하게 굴었던 젊은 안경사가 오늘은 좀 부드러워졌다. 아마도 안경 맞춘다고 거금을 뿌린 영향이리라. (평범한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돈 아니면 권력인 듯!) 새로 맞춘 멀티 포컬 안경 (일명 할머니 안경 )을 껴 보고 아이에게 시력 검사를 받게 했더니, 그동안 컴퓨터 앞에서 열게임하던 탓으로 내 시력보다 더 나쁘게 나왔다. 그나마 난시는 없으니 다행이었다.


안경을 찾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이것저것 샀다. 좀처럼 뭘 안 먹는 아이에게, "엄마가 여기 있는 거 다 사 줄게. 원하는 거 말만 해!"라고 해도 아이는 좀처럼 뭘 먹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씨 없는 수박이며 납작 만두에 말린 생강을 사고 반찬가게에서 이것저것 집어 바구니에 담고 마지막으로 가지를 담아 집에 왔다. 집에 와서 냉장고에 시장 봐 온 과일과 채소들을 넣으려고 하니, 아침에 쿠팡에서 배달 온 사과 한 박스며 양파 한 망태기에 오이와 당근까지 가득해서 공간이 부족했다.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음식 재료들을 조금씩 위로 아래로 좌우로 옮겨서 거의 다 넣었지만 굵은 양파 망태기는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냉장고에 보관을 할 수 없으면 방법은 단 하나, 요리를 해야 했다. 6개나 되는 양파를 다 볶을 수는 없으니 양파 장아찌를 만들기로 했다. 레시피를 보고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니 식초는 내가 평소 청소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용량의 맛없는 식초뿐이었고, 설탕은 아예 없어서 메이플 시럽으로 대체했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고만한 걸로 주눅 들 내가 아니다.  양파 장아찌를 만들어 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려니 이번에는 수박을 잘라야 했다. 수박을 길게 잘라 반은 냉장고 위칸에 넣고 반은 속을 파내었다. 수박 속은 통에 담고 수박 껍질에 도토리 묵을 야채와 같이 무쳐서 담았다. 밖에는 비가 내려서 거실 창으로 바라 보이는 산 정상이 안개로 자욱했다. 집 안 여기저기 둔 나무들이 마치 내가 자연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곳에서 수박에 담긴 도토리 묵을 먹는 행위 자체가 예술처럼 여겨졌다.


일주일 간의 고된 직장 생활 후, 집에 와서 시장 보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나는 참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집에서 하는 모든 일들이 그저 아기자기 재미있다는 것이다. 일이 아니라 마치 소꿉놀이를 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다가 문득 깨달음의 순간이 왔다. 집안일을 이렇게 재미있게 하는 것처럼,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도 <놀이>처럼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소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의 근원은 <일> 자체가 아닌 <관계>에 너무 집중하기 때문인 것 같다. 누구와 함께 일하는가 혹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또는 잘하는가는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직장 생활에서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버리고, 내가 하는 <일> 그 자체를 마치 <놀이> 하듯이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기까지는 크고 작은 수난을 무수히 겪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세월이 데려다 놓은 이 시점에서, 나는 더 큰 자리나 더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 이 직책이나 월급에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해도 나는 이 걸로 만족할 수 있다.  최근 지인에게서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는 폐업 가게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지인의 친구는 가게를 지키기 위해 큰 집을 날렸다는 얘기도 덧 붙였다. 자영업자들이 경제난에 시달리는 이 시기에 일정한 수입이 있다는 것은 참 축복받은 일이다. 그런 감사함을 가지고 생을 대하면 일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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