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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ug 29. 2021

팔월 마지막 주말

토요일 새벽 다섯 시. 삼일 만에 훌라후프를 했다. 누구는 작심삼일을 일주일에 두 번 하는 운동법으로 몸짱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삼일이나 운동을 거른 게 찔렸다. 설거지, 빨래, 청소 등으로 바쁜 아침을 보내고 중고거래에서 사기로 한 물건을 받으러 나간 김에 슈퍼에 들러서 아이에게 줄 스케치북을 사고 시장에 들러서 국화꽃과 상추 그리고 배추 모종을 샀다. 집으로 온 이후에는 상추와 배추를 옮겨 심느라 다시 분주했다. 그리고는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잡채밥을 시켜 먹고 역시 중국집에서 잡채밥은 먹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다음에도 또 잊어버리고 시켜 먹고 또 후회할 것이다.


오후에 다시 집을 나섰다. 눈대중으로는 대략  네 블록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직장까지 걸어가니 자그마치 사십 분이나 걸렸다. 산책도 할 겸 매년 받아야 하는 온라인 교육도 끝낼 겸 해서였다. 지난주 토요일과는 달리 직장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토요일 회사에 나오는 빠진 사람이 또 있다면 걱정스러울 일이다. 서둘러 온라인 교육 리스트에 나온 것 중에 세 가지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스마트폰을 보니 지인에게서 온 문자가 있었다. 산책 갔다가 내 생각이 났다고. 그래서 잠시 미국 다녀오느라고 연락 못 드렸다고 답을 했다. 그런데 문자에 "미쿡^^..."이라고 답이 왔다. 그 사람은 의도적으로 미쿡이라고 적었을까? 아니면 단순한 오타였을까? QWERT의 자판 위치로 보았을 때 ㄱ과 ㅋ의 거리는 상당해서 오타였을 리가 없다. 의도적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또 다른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에서 알던 사람인데 이사 간 곳이 어떠냐는 안부인사였다. 그것까진 좋았다. 그런데 지인이 다니는 교회의 소식지 링크도 같이 보내서 열어 보았더니, 이타적인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어느 대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메시지를 보낸 듯했다. 이웃에게 소음으로 2년 10개월 괴롭힘을 당하다가 시세에서 1억 이상을 적게 받고 이사 온 나에게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의도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상당히 보수적인 이 도시에서 십 년을 살아도 주변인이며 앞으로 십 년 아니 이십 년 아니 죽을 때까지 살아도 나는 영원히 주변인일 것이다.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 평범한 메시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썩 좋진 않았다. 그들은 이 도시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중 한 명은 아예 연락처를 차단시킬까라는 유혹이 잠시 들었다. 나는 점점 더 까칠해지고 있다.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또 새벽에 깨고 말았다. 아무 일도 아닌 듯 지나치려 했지만, 사실 내심 불쾌했던 것이다.


새벽에 깨어 밥도 먹고 (이건 아버지 쪽에서 받은 유전자다. 우리 아버지도 생전에 새벽에  깨어 식사를 하시곤 했다.) 쇼핑 앱에서 살 게 있나  검색해 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 게 있어서 검색해 볼 것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낭비하고 산책이나 갈까 하고  밖을 보니 아직 깜깜했다. (안전 제일주의인 나는 캄캄한 시간에 운동을 나가지 않는다.) 한국에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남편 못지않게 나도 무척 초초한 것 같다. (시간이 드럽게 안 간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무심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나는 식물 늘리기에 집중할 것이다. 벌써 주위에서 국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어제 산 작은 국화 화분 두 개에서 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코로나 이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던 나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의 달인이 되었다. 뉴스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고기 값이 많이 (5프로 이상) 올랐다고 했다. 식량난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인가? 어차피 요즘 고기는 그리 당기지 않는다. (태어나 처음으로 먹어 보는) 다이어트 환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십일만에 허리는 겨우  0.5인치 정도 줄어든 듯하다. 앞으로 온 가족이 한 곳에 모여 살면 이렇게 마의 시간 (새벽 두 시에서 네 시)에 잠에서 깨는 일은 없어질까? 나의 단잠을 깨는 것은 나의 잡념인가? 아니면 습관인가? 아니면 (악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나의 양심의 가책인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으면 사는 곳을 바꾸면 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듯이... 이런저런 잡념에 빠져 있다가 다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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