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똥꽃 Sep 02. 2021

자식 농사 어렵네요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했다. 점심을 늦게 먹어 저녁 식사 시간에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더니, 늦은 시간에 배가 고팠던 것이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할 생각에 눈은 벌써부터 감기는 것 같지만 배고프다는 아이를 모른 채 할 수 없어서 간단한 야식을 만들어 주었다. 그랬더니 평소에 "네!" "아니요!"라는 짧은 대답도 아끼던 녀석이 갑자기 말문이 트였는지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너무도 졸리지만 모처럼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귀담아 들어주기로 했다.


아이에게 낮에 회사에 오래전 알던 사람이 찾아와서 반갑게 한참 수다를 떨었는데, 그 사람이 코로나에 걸렸었다고 말을 해서 깜짝 놀랐다고 했더니 아이가 다니는 학교 친구 중에도 작년에 코로나에 걸린 애가 있단다. 그리고 코로나에 걸렸다가 완치된 사람은 일반인이나 마찬가지라며 나에게 쓸 데 없는 걱정을 한다며 면박을 주었다. 같이 얘기를 나누다 보면 가끔씩 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러울 때가 있다. 오래간만에 말을 꺼낸 아이는 내킨 김에 속에 쌓아 두었던 얘기를 다 토해냈다. 나에게 서운했던 점을 하나도 빠짐없이 밤새 열거를 할 기세였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부족했던 점이 많아 미안하구나. 그래도 엄마가 매일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네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네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말해주잖아!"

그랬더니 아이는 예상외의 답을 했다:

"그건 부모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아주 기본적인 거죠."

그런 대답을 들으니 너무 서운해서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살면서 부모님께 그런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내 아이에게 그렇게만 하면 부모로서의 최선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렇게 말하고는 열한 시가 다 돼서 각자의 방으로 자러 갔다. 침대에 누우면서 내가 아이에게 한 마지막 말을 떠올리니 두 줄기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렀다.


아무리 늦게 잠들었어도 출근 준비를 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야 했다. 부족한 수면 시간 탓에 몸도 피곤하고 또 출근 전에 여유 시간도 없어서 아침 운동은 생략했다. 직장에서 바쁜 일과를 견디고 퇴근을 하고 집에 오니 아이는 학교 수업 스케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을 했다. 수강 신청 변동 마감일은 곧 다가오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수업을 대체할만한 수업도 없어서 골치를 앓고 있었다. 아이는 그렇다고 억지로 들어야 하는 과목에서 성적을 잘 받기 위해 따로 노력을 하지도 않는다. 저녁때 입 짧은 아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음식점 중 하나인 맥도널드에서 시킨 햄버거를 의무감으로 먹은 탓인지 명치끝이 계속 답답했다. 아이의 성적은 나의 성적이 아님을, 아이의 성공과 실패는 나의 성공과 실패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며 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나의 성공에 매달리기에도 바쁘다. 아이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지고 갈 십자가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도 이제까지 건강하게 잘 자라 준 게, 스스로 공부하고 숙제하고 좋은 성적 유지해 준 게 참 고마운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자식 농사라더니, 먹이는 거에서 입히는 거, 공부시키는 거 등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처음 계획대로 남편과 나는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한 대학 교육까지만 돕는 걸로 부모의 의무를 다 할까 한다. 지난 이십 년간 아이들 키운다고, 네 식구 먹고살겠다고 용을 썼더니 어느새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최근 계속 내리는 비 탓인지 자꾸 자기 연민에 빠지고 있는 내가 한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팔월 마지막 주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