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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Sep 04. 2021

제발 질서 좀 지킵시다

가을장마로 계속 음침한 날씨에 일주일 동안 창문마저 닫고 갑갑하게 생활하다가 오래간만에 활짝 개인 날씨에 아침부터 활기차게 움직였다. 설거지, 빨래, 바닥 청소까지 다 하고 아이 공부하는 거 도와주고 난 후에 밀려 있는 일을 하러 회사에 다녀오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는 수학 문제가 어렵다며 짜증을 내더니, 아직 나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단다. 모처럼 기분 좋게 하루를 맞이 하려다가 아이의 짜증에 기분이 나빠졌다. 아이에게 브런치를 시켜 주고 집을 나섰다.  


먼저 우편물을 확인하고 회사에 갔다. 이번 주말에도 회사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리에 앉아 밀려 있는 일의 리스트부터 만들었다. 그러다 이메일을 확인하니 불편한 이메일이 하나 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간혹 불편한 일이 일어나긴 하지만, 통상적인 상식에 어긋나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리스트에 써 내려간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며 완료된 것, 부분적으로 한 것, 못 한 것 들을 표시해 두었다. 다음 주에 출근하면 어차피 이어서 처리해야 할 리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시간을 일하다가 평소 퇴근 시간보다 늦은 시간에 회사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아이가 온라인으로 친구랑 같이 영화를 보고 있는 중이란다. 외국에 있는 친구랑 어떻게 온라인으로 같이 영화를 보는지는 그리고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근처 슈퍼에서 아이가 필요하다고 하는 단어장과 간단한 물건을 사러 작은 카트를 끌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 집에서 한 블록 거리에 있는 꽤 큼지막한 슈퍼는 내가 가끔 가는 곳이다. 단어장을 사고, 과일과 야채 등등을 골라 담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사람은 아직 물건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계산대로 다가가서 계산대 위에 물건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아까 저만치서 물건을 고르고 있던 사람이 어느새 계산대로 성큼 다가와서 공간 분리 플라스틱 스틱을 집어 계산대 위에 놓더니 본인 물건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곳 계산대는 한 사람이 물건을 겨우 놓을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내가 올려야 하는 물건은 반이나 남았는데 사람이 물건을 놓기 시작하니 계산원이 계산대 벨트를 앞으로 당기는 바람에 내가 물건을 놓을 공간은 아예 없어졌다. 계산원은 나에게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본인에게 바로 달라고 했다. 내 뒤에서 물건을 던 사람은 나를 앞질러 계산대 옆으로 갔다. 나는 이 상황이 기가 막히고 불편해서 마스크를 쓴 채로 "드럽게 매너 없네!"라고 중얼거렸다. 팬데믹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인내심 없는 그 뒷사람이 나이 든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침을 튀기며 "차례대로 물건 놓고 차례대로 계산 좀 합시다!"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일은 슈퍼마켓을 갈 때마다 종종 있는 일이다. 물건 사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는 인내심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지난 10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10번 중에 10번씩 일어나는 일이었다. 대형 슈퍼마켓, 중형 슈퍼마켓, 소형 슈퍼마켓 할 것 없이 가는 데마다 그랬다. 심지어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참다가 오늘 내 속에서 폭발을 한 것이다. 내가 계산을 하려고 하니 계산원이 "회원"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회원은 맞는데 포인트 적립은 안 하겠다고 했다. "사람들 많은 데서 전화번호와 이름 공개하는 거 불편하다"는 말과 함께. 구매가의 겨우 1프로, 그러니까 270원 적립하자고 나의 신상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에 계산을 해야 하는 사람은 또 내 꽁무니에 딱 붙어 있다. 정말 불쾌하다. 팬데믹 중에 타인과 최소한의 거리도 유지하지 않고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질서를 지키지 못하고 타인의 공간을 침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거지근성>이란 말이 생각난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한국 문화의 국제적 인지도 향상에도 불구하고 국민 개개인들은 아직도 전쟁 직후 밥 얻어먹던 시절 개판 오 분 전 의식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도로 도처에 늘린 무질서함. 주행 도로에 떡 하니 주차를 해 놓질 않나, 주행 중 앞 차와 안전거리를 위해 조금만 공간을 두면 깜빡이도 없이 좌우에서 밀고 들어오고... 모두들 자기 먼저 가겠다고, 자기만 편하겠다고 자신의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지 않는다. 내 뒤에서 나이 든 사람이 물건을 계산대 위로 막 놓고 먼저 갈 때 이런 상상을 했다. 저 사람은 주차해 놓은 차가 나가기도 전에 자기 차 주차한다고 밀고 들어 올 사람이고, 앞 사람이 문 열고 건물에 들어 서기도 전에 뒤에서 앞사람 밀치고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사람이다라고.

 

앞서 언급한 <거지근성>이니, 몇 차례 사용한 "불편하다"라는 표현으로 혹자는 나를 프로 불편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생활을 해 본 사람은 차례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행동인지 잘 이해할 것이다. 국위 선양을 위해서라도 제발 질서 좀 지키고 삽시다:


1. 도로는 주차장이 아닙니다. 도로에서 주정차하지 마세요.

2. 깜빡이는 쓰라고 있는 겁니다. 갑자기 훅 들어오지 말고 차간 거리를 생각한 후 깜빡이로 신호를 보내고 천천히 차선 변경하세요.

3. 당신이 탄 차는 레이스카가 아닙니다. 차선 변경 신호를 보면 일부러 더 빨리 달리지 말고 양보 좀 하세요.

4.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할 공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데나 주차하지 마세요. 주행과 보행에 위험 요소가 되고 교통사고를 유발합니다.

5. 물건을 사려고 계산대에 있을 때 질서 좀 지키세요. 새치기하는 거 정말 보기 흉합니다.

6. 계산대에서 앞사람이 계산할 때 안전거리 유지해 주세요. 팬데믹 중에 사회적 거리 두기 안 지키는 것 공중 건강에 위험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앞 손님과 계산원이 개인 정보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타인의 개인 정보를 존중해 주세요.

7. 타인의 시간과 공간도 중요합니다. 당신의 이기심으로 타인의 시간과 공간을 빼앗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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