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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Sep 26. 2021

가족을 다시 만날 때까지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또 새벽에 깨었다. 나도 제발 늦잠 좀 자보고 싶지만, 빌어먹을 습관이 나를 항상 일찍 깨우는 바람에 알람조차 필요가 없다. 늘 하던 대로 화장실에 다녀와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기를 보았다. 다섯 시가 넘었으니 굳이 다시 잠들려고 공들일 필요가 없다. 다시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그새 확인하지 못한 SNS 업데이트가 있다고 알림이 와 있다. 얼굴책에서 지인의 소식이 떴다.


20년을 넘게 함께한 결혼 생활을 정리한다는 얘기다. 지인 부부가 그런 얘기를 주고 받은 지는 꽤 된 듯한 뉘앙스다.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지인 가족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참 안됐다 싶었다. 무엇보다 내 또래 중에 우리 부부보다 오래 결혼 생활한 부부는 흔치 않은데, 그렇게 오래 산 부부의 결혼 정리 소식이 안타까웠다.


안 그래도 아침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들어 맘이 싱숭생숭한데 남편에게서 연락이 왔다. PCR 테스트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비행기 표를 바꾸기 위해 항공사와 6시간 동안 통화를 했단다. 다행히 비행 날짜는 하루 미루어 뒀는데 24시간 내에 PCR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비행 날짜를 또 미뤄야 하고, 게다가 PCR 테스트를 또 받아야 한다는 기가 막힌 얘기다. 짜증이 난 남편이 <당장 한국에 가고 싶다>며 눈물을 흘린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어린애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열심히 기도 하고 한국에 도착하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으니 일단 잠을 푹 자둬라고 했다.


그동안 떨어져 사느라 우리 부부는 각각 무척 고단했다. 내가 내 방식대로 외로움을 이겨내는 동안 남편은 남편 방식대로 외로움을 이겨낸 것이다. 우리 부부가 다시 한 집에 살게 되면 이제 더 이상 헤어져 사는 일은 없길 바란다. 코로나 시국에 그리고 코로나 이후에도 가족이 한 곳에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난세에 왜 어떤 부부는 같이 있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어떤 부부는 각자의 길을 택하는 걸까?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 다르다.


우리 가족이 다시 하나가 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갑자기 인구 밀도가 높아져 일단 생활공간이 줄어들 것이고 (으윽... 침대 또한 좁아질 것이다.), 식비는 두 배가 들 것이고, 티브이 소음 또한 늘어날 것이며, 아래층에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두 남자의 걸음걸이를 매시간 감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혼자 사춘기 아이를 견디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의 역사 숙제도 남편에게 봐 달라 할 수 있고, 늦은 시간 아이 픽업도 남편이나 아들에게 부탁할 수 있다. 남편과 산책도 하고, 일가족이 등산도 하고, 아들과 같이 밥도 먹을 수 있으니 기대된다. 가족은 함께 있을 때 강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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