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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Nov 10. 2021

차가 갑자기 멈췄다

내 차는 2007년에 태어났고 5년 후에 나를 만났다. 며칠 전 티브이에서 팽현숙이 팽카를 보내며 엉엉 우는 것을 보았다. 나도 내 차에게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많이 들어서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차는 센서가 망가진 지 꽤 되었지만 집에서 회사까지 차로 10분 남짓 걸리는 거리를 그동안 성실히 오갔다.

 

퇴근 후에 아이를 태우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길로 들어서서 비좁은 아파트 입구 쪽으로 다가가는데 갑자기 엔진등이 깜빡이더니 차가 스스로 멈추기 시작했다. 나는 가까스로 아파트 입구로 가보려고 했지만 차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정말 차가 갑자기 서 버리니 당황해서 일단 시동을 껐다. 뒤 차에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비상등을 켜고 차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고 얘기를 해도 막무가내였다. 출구에서 나오던 차는 골목 다른 방향으로 나갔지만, 내 뒤의 차는 계속 재촉만 해댔다. 일단 엔진이 꺼졌으니 시동을 다시 걸어 보기로 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일 분쯤 후에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나오셔서 상황을 파악하신 후에 뒤에서 차를 밀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차 시동이 완전히 꺼진 상태라 그것 또한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시동을 걸어야 했고, 뒤에서 계속 욕을 퍼부어 대던 아저씨가 경비원의 부탁으로 투덜거리며 차를 밀려고 하는 순간 시동이 걸렸다. 내 차도 그 사람의 손이 닿는 건 싫었나 보다. 그래서 차를 몰고 주차장에 들어가는데 뒤차도 같이 들어왔다.

 

차를 세우고 경비실에 가서, 차가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바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말과 뒤에서 욕하던 차량이 거주하는 곳이 어딘지를 물었다. 관리실에서는 알려 주지 않았다. 허긴 안다고 한들 뭘 하겠는가? 그저 차가 고장이 나면 팔을 걷어붙이고 밀어주는 그런 이웃은 없다는 것과 아직도 여성 운전자를 함부로 대하는 그런 미개한 사람이 이웃이라는 것이 슬플 따름이었다. 자신은 앞으로 길 위에서 예측하지 못한 일이 전혀 생기지 않을 듯 막말하고, 불 난 집에 부채질하던 그 이웃이 원컨대 앞으로 운전중에 절대로 당황스러운 일이 없길 바란다.


나에게 오기 전에 5년을 그리고 나에게 온 후 10년을 지낸 차에게 이제 이별을 고할 때가 온 듯하다. 그렇잖아도 얼마 전부터 남편이 새 차를 사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냥 못 이기는 척 <그러자>고 해야겠다. 이 나이에 모르는 사람에게 욕 처먹을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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