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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Nov 11. 2021

그동안 고마웠지만 이제는 안녕

최근 야간 근무로 갑자기 밤낮이 바뀌어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은  집에 두고 시내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한 아이를 데려다주러 집을 나서는데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가을과 겨울의 중간쯤에 들어선  날씨 때문에 가뜩이나 몸은 움츠려 드는데 요 며칠 비까지 계속 오고 있다. 아이를 약속 장소 근처까지 데려다주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남편이 출근을 하기 전에 카센터에 들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남편이 운전대를 잡았다. 전날 차가 멈춰 섰던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오면서 마음이 계속 불안했다. 골목길을 지나 양쪽으로 주차가 돼 있는 소방도로를 지나 사 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좌회전만 무사히 하면 비상시에 도로에 정차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사 차선도 무사히 지나치고 다시 복잡한 이차선으로 들어가려고 우회전을 하는 찰나에 또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엔진 등은 깜빡거리고 전날처럼 차가 천천히 정차를 하려는 낌새를 보였다.  아직 카센터에 도착하려면 도로 양 옆으로 주차가 된 비좁은 도로를 무사히 통과해야 했다. 앞에 밀린 차들로 설상가상 거북이걸음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아, 이러다가 어제처럼 멈춰 버리면 어떡하지?" 운전대는 남편이 잡고 있었지만 마음은 너무 불안했다.


그래도 나보다는 운전경력이 많은 남편이 차를 잘 달래 가며 무사히 카센터까지 갔다. 정비사님께 왜 오게 됐는지 설명했다. 오랫동안 내 차를 손봐 주셨던 곳이라 내 차를 잘 알고 계셨다. 고장 난 곳을 알아내었지만 차 수리비에 들어가는 돈이 사실 차의 시세보다 더 비싸기 때문에 폐차를 하는 게 더 경제적으로 햔명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매몰차게 나는 십 년을 함께한 내 차와 이별을 결정했다.


차를 두고 오면서 시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최근 오일 교환도 안 하고 기름도 가득 채우지 않았을 텐데... 사실 그 차를 타고 내가 지난 십 년간 오간 곳이라고는 차로 십 분 남짓한 집과 회사가 전부다. 그래도 차가 있어서 가끔씩 장도 보고 매일 택시를 타는 번거로움은 피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시내에서 재미있게 놀다 온 아이에게 폐차 결정에 대해 얘기하고, 다음날 걸어서 학교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내일은 폐차 등록증을 제출해야 하고, 새 차를 사려고 은행에서 대출 또한 받아야 한다. 집 대출도 아직 남았는데, 차 대출까지 받아야 하니 또 대출을 다 갚을 때까지 앞으로 계속 일을 해야 한다. 돈을 벌려면 차가 필요하고 빚 얻어서 차를 사면 또 계속 돈을 벌어야 한다. 나는 일하러  가려고 차가 필요한 것인가? 차 때문에 일을 계속해야 하는가?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이 굴레 속에서 나의 삶은 계속된다. 언젠간 일도 차도 필요 없는 편안한 곳에서 안락한 생활을 할 때가 오지 않을까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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