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자원봉사와 벽화길

자원봉사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by 별똥꽃

아이와 빗속을 걷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 같았으면 진동으로 해 두었을 텐데 꼭 받아야 할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통화음이 들리게 설정을 해 두었다.

A: "평일인데 두 분 다 오실 수 있겠어요?"

I (나): "네, 아이가 방학 중이라 괜찮아요!"


올해 들어 처음 하는 자원봉사 활동이라 부푼 마음으로 다음날 오후 딸과 나는 약속 시간보다 1시간 반 가량 일찍 길을 나섰다. 지하철 노선과 출구는 미리 알아 두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을 넉넉히 잡았다. 그간 딸도 나도 지하철을 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지하철이 그렇게까지 붐빌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몰려드는 인파에 정신이 아찔했다. 도착한 역 출구 바로 옆에 편의점이 있었다. 앞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많을 것 같아 교통카드를 두 개 샀다. 한 개에 오천 원 하는 교통카드를 사며 물가 상승을 또 실감했다.


이 번에 등록한 자원봉사는 자원봉사센터에서 벽화길을 탐방하며 자원봉사에 대해 배우는 자원봉사 입문 같은 활동이다. 지하철 역에서 자원봉사센터를 찾기는 쉽지 않아 결국 구글 지도를 사용했다. 다행히 아이가 지도를 보며 잘 찾아 주었다. 자원봉사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행사 시작 20분 전이었다. 너무 일찍 가서 실례가 될까 봐 망설이다 강의실로 들어가니 다른 사람들은 이미 착석해 있었다.


센터에서 교육을 담당한 직원이 자기소개를 마치고 탐방할 벽화길 제작과 관련된 영상을 몇 편 보여 주었다. 컴퓨터에 연결된 프로젝트가 하얀 벽면에 비디오를 상영했다. 스마트보드에 익숙한 나에게 생소한 물건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아이가 의아해했다. 대학 시절 프로젝트로 사진을 한 장씩 보여주는 강의를 들은 적은 있지만, 프로젝트로 영상을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프로젝트에서 스마트보드로 넘어가는 과도기 산물이라 내가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내린 비가 다행히 그쳐서 영상을 몇 편 본 후에 벽화길을 둘러보러 갔다. 벽화길은 세 코스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코스마다 주제가 달랐다. 자원봉사, 안부 캠페인, 그리고 안전 캠페인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실 아름다운 벽화에 익숙한 나에게 교육을 위한 벽화가 퍽 와닿지는 않았다. 벽화길을 다 둘러보고, 체험 학습 참가자들이 과제를 완성해야 했는데,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벽화를 골라야 했고 아이는 벽화길에서 개선해야 할 점을 찾아야 했다. 둘의 과제가 바뀌었으며 아마도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왜 과제를 서로 바꾸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 딸도 나도 본인의 과제에 충실하기 위해 고민을 했다.


이 벽화는 텍스트 없이 지구 온난화라는 주제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라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이의 안목과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이가 파손된 벽이나 벽화 또는 물건을 선택하거나, 벽화 거리에서 유지가 안 되고 있는 점을 지적할 거라고 생각했다. 반면 아이는 나처럼 텍스트가 없는 벽화 중에서 예술성이 떨어지는 그림을 선택해서 작품 속 각 부분의 크기, 각 부분의 거리, 색상, 윤곽 등 기술적인 면을 지적했다.


체험 학습의 마지막 활동은 본인이 생각하는 자원봉사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체험학습을 시작할 때 벽화 경험이 있는지 물어봤을 때 침묵했을 것이다. 막상 눈앞에 나무 조각과 사인펜이 놓여 있으니 난감했다. 딸은 인터넷으로 찾은 사진을 보며 그침 없이 그려 나갔다.


난감했다. 아이에게 그림 그리는 걸 도와 달라고 했더니 아이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인터넷으로 사진을 찾아보고 그리라고 했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렸는데, 신체의 비율이나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이 전혀 되지 않았다. 아이가 하는 걸 보고 옅은 사인펜으로 밑그림을 그렸지만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참했다. 결국 아이가 검은색 사인펜으로 윤곽을 그려주며 낄낄 웃어댔다.

예술성이 딸리기 때문에 텍스트를 추가해야 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


내가 생각하는 자원봉사의 의미다. 개인이 각각 빨리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멀리 나아가는 것이고, 나와 아이가 자원봉사를 하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중년의 엄마이고 <아이>는 고등학생 소녀지만, 아빠와 아들이 될 수도 있고,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이 될 수도 있다. 사춘기가 늦게 시작한 아이는 몇 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고, 가족을 멀리 하더니 최근 들어 먼저 말도 시작하고 자발적으로 같이 외출도 한다.


두 시간 체험 학습 자원봉사는 총 여섯 시간이 걸렸다. 가서 교육받는데 세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데 또 세 시간. 아이가 자발적으로 외출을 하는 데는, 시내를 돌아다니며 같이 외식하고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하는 목적성이 강하다. 그렇게라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외출할 때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되길 바란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이사한 후에 학교 마치고 집에 가는 게 참 행복해요. 엄마가 새로 사 준 스마트 침대가 너무 좋아요. 친구들도 놀러 올 때마다 신기해서 버튼을 막 누르고 그래요.

아이의 속마음을 알고 난 후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간 아이가 표현을 하지 않아서 잘 몰랐었다. 어쩌면 사느라 바빠서 아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이와 자원봉사를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해 더 알아 가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