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인턴을 시작한 후 주말 봉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에 두 시간 동안 하는 봉사라 활동을 마치고 시내에 가서 밥도 먹고 쇼핑도 하려고 계획을 하고 모이는 시간 한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모이기로 한 곳이 집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인데 대충 어디인지 알 것 같아서 일단 구글 지도를 켜 들고 걷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니 기온이 점점 올라가서 새로 사 입은 원피스 밑으로 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번에도 딸이 목적지를 찾아 주었다.
도착한 곳은 허름하고 작은 한옥집이었고 기관명을 알리는 작은 사인이 하나 붙어 있었다.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어 서니 고스톱 치는 소리와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건가?>,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라는 불안감과 혼돈이 몰려왔다. 집 안 왼쪽 입구에도 사인이 붙어 있었다. 밖에 서 있기도 뭐하고, 그냥 들어가기도 뭐해서 잠시 머뭇 거리다가 크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고스톱을 치고 있던 무리 중에 하나가 말했다: "누구세요?"
나는 대답했다: "자원봉사 왔는데요."
방문을 열고 내다본 그녀는 방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란다. 거실에는 에어컨이 하나 있었고, 거실 좌우로는 고스톱이 한창인 우측방과 비어 있는 좌측방이 있었다. 거실 책상에 놓여있는 방명록을 작성하니 연이어 젊은 남자 두 명 그리고 여자 한 명이 더 들어왔다.
좁은 방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거리로 나갔다. 다섯 명이 일렬로 늘어서서 자리를 잡고 각각 캠페인 푯말을 들고 서있다. (사실 공고문에는 구체적인 봉사활동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아서 실내 활동인지 실외 활동인지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리에 행인이 지날 때마다 우리는 교육받은 대로 이렇게 외쳤다:
"천 원이면 소중한 연탄을 구 할 수 있습니다."
"동전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러분이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
가끔 가다가도 돌아서서 기부함에 돈을 넣어 주시는 분들이 있었지만, 외면하는 이들도 많았다. 오후의 해는 쨍쨍한데 한겨울 연탄 모금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쯤 아이가 속이 너무 안 좋다면서 토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멀리 보이는 화장실 쪽으로 걸어가는데 아이가 휘청거리며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벤치에 겨우 아이를 앉히고 의식을 잃은 듯한 아이의 마스크를 벗기니 입술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119에 연락할까요?"
갑자기 쓰러진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는 나를 대신해서 어떤 이는 119에 전화를 해 주었고, 가게에서 일하던 사람은 얼음이 든 물을 가지고 왔으며, 또 어떤 가게 주인은 바닥에 아이를 눕히라고 매트를 가져다주었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던 사람 중에 모금 운동 구호의 선창을 하던 젊은 여자가 아이의 팔을 주물러 주어서 아이가 빨리 의식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그늘에 앉아 있으니 곧 구급차가 도착했고, 혹시 아이가 또 기력을 잃고 쓰러질 것에 대비해서 시내에 있는 일반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이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이 병원으로 왔다. 아이는 IV를 맞은 후에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그곳 응급실 환자들은 모두 IV를 꽂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IV는 반창고 같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퇴원 후에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아이의 신발을 1 족 산 후 집으로 왔다 (그리고 신발 한 켤레를 왜 1족이라고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한 짝만 신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이는 해가 뜨거운 오후에 봉사활동 장소로 걸어가고 밖에서 푯말을 들고 서 있는 동안 heatstroke이 온 듯했다. 어찌 되었던 봉사활동이 끝나기 전에 예기치 않게 자리를 떠나게 되어 남은 자원봉사자들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아이가 금세 기력을 되찾아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날 아침에 낯선 이름으로 톡이 와 있었다:
"어제 봉사활동 오신 분인가요?"
그래서 전날 봉사활동 담당자가 혹시 나중에 보험 문제로 골치 아플까 봐 염려돼 확인 문자를 보냈나 싶었다. 다시 온 문자에는 전날 같이 봉사 활동했던 학생들인데 우리 딸과 동갑내기이고 친구 하고 싶단다. (분명히 연락은 한 명에게서 왔는데, 자꾸 <우리>라고 지칭했다.) 전날 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두 명이 있었다. 어쨌든 딸에게 그런 톡이 왔었다고 전해 주었다. 딸은 자신이 열사병으로 쓰러졌던 일과 그것을 본 사람을 다시 볼 일 없길 바라는데, 자기랑 친구 하자고 연락이 오니 많이 당황한 눈치다. 그리고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점심을 먹으며 그 얘기를 하면서 한참 동안을 웃었다. 봉사 활동하다가 구급차에 실려 갔던 자신의 흑역사를 기억하는 사람과 친구를 할지 아니면 안 할지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이다. 나로서는 아이가 이 무더운 여름을 잘 견디도록 체력을 길러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출했던 남편도 그런 아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식료품 가게에서 아이 간식을 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