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주일하고 하루가 흘렀다. 지난번 거리 모금 운동 봉사 활동 중 아이가 열사병으로 쓰러진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남편이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일전에 무료 급식 봉사 활동에서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져 다리를 다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남편과 아이에게 봉사활동 중 조심하라고 당부를 했다.
네비로 장소를 찾아 간 후 가까운 곳에 일단 주차를 했다. 주차를 한 곳에서 행사가 있는 건물까지 대략 200미터가량을 걸어갔는데 뜨거운 아침 햇살에 살이 타들어 갔다. 마침 같은 건물로 들어가는 나이 드신 분들이 계셔서 뒤따라 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모이는 시간보다 50분가량 이른 시간이었다. 지하 건물 안에는 테이블이 빽빽이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뭔가 담긴 비닐봉지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는 건물 속이 서늘해서 좋았다. 자원봉사자 출석부에 이름을 적었다. 그곳 센터장은 작은 키에 무뚝뚝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내가 이름을 적기가 무섭게 일거리를 주었다. 센터장이 남편에게는 건물 계단을 빗자루로 청소하라고 하고 딸과 나에게는 의자와 테이블 닦는 일을 주었다. 우리가 청소를 하는 동안 그 센터 사람들로 보이는 다른 분들은 식탁 앞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식탁과 의자 닦는 일이 끝난 후에는 센터 사람들이 쉬고 있는 곳의 가전제품 등을 닦았다. 청소가 다 끝날 무렵 다른 자원 봉사자들이 한두 명 도착했다. 새로 도착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바나나 봉투가 가득 들은 상자가 여러 개 있었는데, 우리는 바나나를 싸 놓은 비닐봉지를 찢고, 상한 바나나와 상하지 않은 바나나를 바나나 손에서 분리시켰다. 분리 작업은 꽤 오래 걸렸다. 분리된 바나나는 아까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봉투에 나누어 담았다. 바나나가 얼마나 많은지 봉투가 묵직해졌다. 봉투 안에는 바나나 외에도 컵라면과 다른 간식이 담겨 있어서 젓가락을 하나씩 담고 봉투를 일일이 묶었다.
센터장이 모이는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네 명에게 식당 바닥을 쓸고 닦게 했다. 건물 앞 계단과 건물 뒤쪽 계단을 쓸고 온 남편의 이마에는 땀이 줄줄 흘렀다. 청소가 끝나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서 무료배식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까 깨끗이 닦아 놓은 의자에 자원봉사들이 앉아 무료배식 시간을 기다렸다. 옆에 앉은 남자와 남편이 수다를 떨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어떤 나이 든 할아버지가 오셨다. 상냥하게 인사를 건넨 할아버지는 센터장에게서 카운터에 따로 챙겨둔 음식 봉지를 하나 건네받았다. 그리고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나가셨다. 오분쯤 후에 다른 할아버지가 오셨다.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센터장도 아무 말 없이 음식 든 봉지를 하나 건네주셨다. 다시 아무 말 없이 그분은 음식 봉지를 들고 사라지셨다.
배식 시간 십 분 전 자원봉사들은 음식이 담긴 봉지들을 건물 입구로 날랐다. 급식 시간이 되자마자 어떤 사람들은 도로변에서 교통 안내를 했고 나머지 자원봉사자들은 건물 입구에서 계단으로 쭉 늘어서서 음식이 든 봉지를 징검다리처럼 앞사람에게 전달했다. 센터장이 일, 이, 삼... 숫자를 셀 때마다 사람들은 봉투를 하나씩 앞사람에게 전달했다. 준비된 봉투는 배식 시간 시작 후 겨우 오분만에 모두 소진되었다. 지하로 다시 내려온 자원봉사자들의 출석을 확인한 후에 센터장은 자원봉사자들은 해산시켰다. 센터장이 봉사 신청 없이 그냥 도우러 온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급식 도움이 일은 무척 간단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들어와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포장된 음식을 나눠주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가고 싶을 만큼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봉사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야 한다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럼 내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봉사활동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일단, 봉사 활동을 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짧게라도 오리엔테이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왜>와 <어떻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자원 봉사자들에게 내리는 지시 사항이 너무 단순해서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서 바나나를 분류할 때, "봉투를 벗겨서 바나나를 세네 개씩 갈라서 상자에 넣으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면 좋았을 거 같다:
여기 봉투에 아직 담겨 있는 바나나를 상한 것과 상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 작업을 할 텐데, 상한 것은 떼어 내서 이쪽 상자에 담아 주시고, 상하지 않은 바나나는 저쪽 상자에 담아 주세요. 상한 바나나는 거름으로 쓰일 것이고 상하지 않은 바나나는 무료 급식 봉지에 담기는데 한 봉지에 세네 개씩 들어갑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설명을 들으면 자원봉사자들이 바나나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분류해야 할지 그리고 분류 후에 어디로 이동해야 될지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일의 순서를 머릿속으로 계산할 수 있다. 구체적 설명 없이는 사람들이 자발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단순히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센터장이나 센터 사람들이 없으면 아주 단순한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셋째로 두 번째와 같은 맥락으로 자원봉사자를 받는 기관이 너무 그날 일을 일찍 끝내는 것에만 혈안이 돼서, 그곳에 오는 봉사자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마치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런 전반적인 분위기는 자원봉사자들이 봉사활동을 한 후에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든다.
이렇게 새로운 봉사활동에 올 때마다 나름 배우는 것이 있다. 효율적 업무 처리, 적극적 고객관리의 필요성, 결과뿐만이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하는 태도 등. 이런 것들은 휴가 후 직장으로 돌아갔을 때 나에게도 필요한 기술들이다.
이번 휴가 직전에 불쾌한 일이 있었고, 그 이후로 나는 휴가 기간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 속에 쌓인 부정적 에너지는 지난번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과 인터넷에서 종일 싸우는 참사를 가져왔다. 내 속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처럼 시한폭탄처럼 그렇게 들끓고 있다.
초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감사한 마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모습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선명하게 보인다. 영혼 없는 그들의 몸짓들에서 나의 그림자를 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결과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매 순간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 비록 개인차가 존재하더라도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더 바람직한 결과에 이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