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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13. 2022

인간적으로 너무 심심하다

어느 직장인의 초라한 휴가

인터넷에 찾아보았더니 심심해서 죽은 사람은 없단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너무 심심하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런 모든 것에 지쳤다. 휴가 중이라도 나를 쉬게 두고 싶다. 이것은 분명 번아웃 증후군 말기 증세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휴가철 조차도 매일 일과표에 맞춰 생활했다. 그리고 달성하기 위해 세운 목표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학점 이수, 체중 감량, 운동, 어학 공부, 독서, 글쓰기 등등... 그런데 이제는 발등에 불 끄는 삶이 점점 싫어진다. 바쁘게 한 사이클을 마치고 쉬면서까지 그렇게 열심을 다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잠시라도 쉬어야 한다.


최근에 먹기 시작한 약이 수면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도 새벽 다섯 시가 채 되기도 전에 일어 난다. 이런 불필요한 성실함은 저주스럽기까지 하다. 주말에도 휴가철에도 나는 항상 일찍 일어 난다. 처음 휴가가 시작되고 낮잠을 며칠 잤었다. 달콤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제는 낮잠조차 오지 않는다. 만약 퇴직 후의 나의 생활이 이렇게 무료하다면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았다. 이제 볼만한 영화도 드라마도 없다. 또 한동안 다 큰 아이들 뒷바라지한다고 정신없이 보냈다. 마치 파트타임 엄마에서 풀타임 엄마로 바뀐 듯이.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지겹다. 다 큰 아이들 밥 챙겨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도 해 주고... 나는 우리 집 시녀다. 집에서 놀고 있으니 나의 신분은 어느새 시녀가 돼 버렸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데 나는 왜 생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하도 심심해서 휴가 중에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닉네임으로 물어보았다. 다른 여러 닉네임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1.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 데 가세요.

2. 먹고 싶을 때 먹고, 보고 싶은 거 보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에어컨 켜고 시원하게 집에서 쉬세요.

3. 집안 정리하세요.

4. 근처에 유명한 카페에 가세요.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나의 문제를...


결혼 이후, 아니면 어릴 적부터 나는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살았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는 더 그랬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은 나는 아파도 안 되고, 갑자기 사고가 나도 안 되고, 죽어서는 더더욱 안 되었다. 나는 실패해도 안 되고, 포기해도 안 되었다. 나는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니까.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사는 삶>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최근 고향을 다녀왔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휴가가 끝나기 전에 졸업한 대학교에 다녀오고 싶다. 나의 청춘을 기억하고 싶어서. 그리고 바다가 보고 싶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내 항해의 방향을 정하고 싶다. 초심, 청춘, 방향성... 이 모든 것은 나를 살아 있게 한다. 타 들어간 심지에 다시 한번 불꽃을 피워야 한다.


심심해서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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