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지우. 춘추전국시대 기나라에 살던 어떤 사람이 하늘과 땅이 꺼질까 근심하였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줄여서 기우라고 한다. 혹시 나는 그 사람의 자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소에 근심이 많다. 워낙 근심이 많은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면서 더더욱 불안하다. 장기간의 휴가에도 불구하고 여행조차 떠나지 못한다. 밖에서 외식을 시작한 것만 해도 겨우 한 달 정도 되었다. 최근 폭염에 살갗이 타 들어가도 안팎 할 것 없이 마스크를 하고 다닌다.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까 봐 불안하고, 여행지 돌아다니다가 감염병이라도 걸릴까 불안하다.
최근 중고상품 사고파는 앱에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불안과 걱정이 좀 줄었다. 같이 책 읽고 소통하고 싶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같은 동네 사람이라서 만나서 책과 인생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오프라인으로 단 둘이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아주 큰 일탈이다.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그 사람과 나의 표면상 공통점이 있어서 마음이 조금 놓인 것 같다:
1. 나이대와 성별이 유사하다.
2. 불안을 느낀다.
3. 책을 좋아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오프라인으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날, 같은 앱에서 다른 글이 올라왔다. <코로나 확진자이고 자가격리 중인데, 쓰레기 버리러 밖에 나가도 되냐?>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댓글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아직 코로나의 정도를 걷느냐?
-일반 감기하고 같다. 그냥 일상생활하면 된다.
-확진 사실 숨기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밖에서 마스크 안 써도 되는데, 누가 확진자고 아닌지 어떻게 알겠냐?(솔직히 밖에서 마스크 안 쓰는 거랑 확진자와 비 확진자 구분의 상관관계가 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코로나 관련 규정이 바뀌었나 하고 온라인으로 찾아보니 7일 의무 격리 규정과 격리 장소 무단이탈 시 처벌에 관한 법률은 아직 유효하다고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닉네임으로 소통하는 그 온라인 공간에서는 자꾸 격리 중인 확진자에게 격리 의무가 무효한 듯 자유로운 이동을 종용하는 댓글이 또 달렸다.
이쯤 되면 나는 규정 확인에 들어가야 한다. 아침부터 대한민국 질병관리청에 전화를 넣어서 확진자 격리 기간과 격리 의무에 관한 현재 방침에 대해서 재확인을 했다. 그리고 격리지 무단 이탈자 처벌에 관해서 물어보니 해당 보건소와 통화하라고 알려 주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해당 보건소로 전화를 했다. 격리지 무단이탈 시 무단 이탈자에 관한 정보와 시간, 장소 등에 관한 신고를 받고 사실 확인 후에 처벌을 내린다고 했다.
무책임한 거짓 정보 유포가 난무하는 온라인에 확진자의 격리지 무단이탈을 막기 위해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적었다:
1. 코로나 확진 발표가 난 후 확진자는 7일 동안 자가 격리 의무가 있다.
2. 코로나 확진자는 아플 때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약을 수령할 수 있다.
3. 2번에서 말한 경우를 제외한 확진자의 격리지 이탈은 격리지 무단 이탈로 간주된다.
4. 격리지 무단 이탈자는 사실 확인을 거친 후에 처벌을 받는다.
5. 격리자의 쓰레기 처리에 대한 정부의 특별한 지침은 없고, 격리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격리지에 보관해야 한다.
6. 격리 기간 동안 힘든 사항은 해당 지역 보건소에 민원 전화를 넣으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상식과 법이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꼭 해야 하는 말>을 함으로써, 마치 내가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가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으니) 혹은 쓸데없이 언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타인의 관점으로 볼 때)라는 생각이 들며 불안해졌다. 다행히 온라인에 글을 처음 올렸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격리지 이탈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이후로는 반사회적이고 무책임한 댓글들이 올라오지 않아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이 일을 겪으면서 나의 불안에 대해 좀 더 관찰하게 되었다. 나는 인간성에 대한 신념이 없다. 익명의 사람들이 법대로 양심대로 행동할 거라는 믿음이 없다. 나의 불안의 근원은 불신이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 같다. 사람은 선한 존재가 아니라 악한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본인의 이기심을 채우기 위해 언제든 타인을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의리 없고 간사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경계하고 이런저런 걱정을 하느라 불안을 느끼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비관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 보아야겠다. 나의 불안이 내 인생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르겠다. 늘 불안한 나에게 세상에는 불안한 존재가 어딘가에 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