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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16. 2022

온라인에 SOS를 외친 어느 젊은이

그는 진심으로 살고 싶은 것인가?

부부가 택시를 잡아 탄 후에 여자는 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 택시 타고 가고 있어요. 5분 후에 빌라에 도착할 거예요.>

택시는 큰길에 놓인 다리를 건넌 후에 차가 겨우 하나 들어갈 듯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네비에 넣은 주소지에 도착한 후 부부를 내려놓고 택시는 떠났다. 비좁은 길 양쪽으로 어선 수많은 건물들 속에서 부부는 젊은 남자가 살고 있다는 빌라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런데 한 건물 앞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젊은 남자가 보여 여자는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띠며 먼저 인사를 했다.

"혹시, ○○..."

남자가 그렇다고 말했다. 여자는 젊은 남자에게 남편을 소개했다. 젊은 남자는 여자에게 건네받은 온갖 음식이 든 봉투를 빌라에 두고  내려왔다.


셋은 곧 빌라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남자들은 큰 맥주 두 캔을 골랐고, 계산을 마친 후 셋은 편의점 앞에 놓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젊은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열일곱 살 때 아빠 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아빠는 빚을 못 갚아 중국으로 도망을 치셨고, 엄마는 친척집으로 가셨고, 저는 그때부터 학교를 그만두고 기숙사가 있는 곳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고등교육은 검정고시로 마쳤고, 타 도시에서 수학여행을 온 초등학생들에게 유적지를 소개하는 일을 한 동안 했어요. 하루 겨우 세 시간을 자고 일했지만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게 참 좋았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 이후에 수학여행이 줄어들면서 일거리가 없어져서 이 도시로 이사를 오게 됐어요. 그 이후로 오토바이 배달일을 했는데, 지인에게 보증을 잘못 선 탓에 천 삼백 만원 가량의 빚을 대신 갚아야 했어요.  일 년 정도 정신없이 일해서 빚을 간신히 다 갚고 다시 숨 쉴 수 있게 됐어요. 그러던 중 아는 형에게서 아파트 분양권 투자를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 안 하고 편하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현재 살고 있는 원룸 보증금 삼만 원을 빼고 가지고 있던 현찰과 주변 분에게 빌린 돈 등을 모두 끌어 모아 이천만 원을 투자했어요. 처음 세 달 정도는 투자한 곳에서 한 달에 삼백만 원 정도의 수익금을 받았는데, 보름 전부터 수익금이 들어오지 않았고, 아는 형에게서 연락이 끊겼어요. 나중에 수소문해보니 그 형은 이미 해외로 잠적하고 없었어요. 경찰서에 가서 아는 형을 사기죄로 고소했지만 해외 도피 중인 그 형을 찾을 방법은 없어 보이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토바이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났어요. 무보험 운전이다 보니 현금으로 이백 오십만 원을 물어 줘야 했는데 그 이후로는 밥 먹을 돈도 없어서 이틀에 겨우 한 끼 먹어 가며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깊은 절망에 빠졌어요. 친구에게 메시지 하나를 남기고 죽을 작정으로 약이란 약은 다 털어 넣었는데, 메시지를 본 친구가 경찰을 불러 빌라 문을 열고 들어와 때마침 저를 병원에 데리고 갔어요. 병원 치료를 다 받고는 병원비도 못 내고 퇴원을 했는데 이런 저 자신이 너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물론 위의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되었다. 이야기 나누는 중간중간 젊은 남자는 담배를 피운다며 간간히 자리를 떠났다. 옆에서 맥주를 콸콸 마셔대던 여자의 남편은 화장실에 가야 했다. 돌아남편은 어두운 낯빛으로 다녀온 곳이 화장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열악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젊은 남자에게 부부는 그들의 어려웠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가난, 가정 폭력, 퇴학, 자살, 파산, 전쟁 등 인간사의 모든 어려움을 직간접적으로 총망라한 여자에게 젊은 남자의 이야기가 사실 그리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젊은 남자의 절박함의 순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젊은 남자의 이야기에서 세부사항이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몇몇 있다는 점과 담배를 피우고 올 때마다 젊은 남자가 자신의 절박함을 더 열심히 어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여자의 의심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편의점 앞에서 낯선 이들의 어색한 만남은 두 시간여만에 종료되었다. 작별인사를 하고 오는 길에 여자는 젊은 남자에게 지갑에 항상 넣어 다니던 오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주었다. 젊은 남자가 약간 놀란 기색을 하더니 고맙다고 말했다. 부부는 젊은 남자와 통성명도 하지 않고 그렇게 헤어졌다.

젊은 남자가 사는 동네로 오기 전 그 온라인에 올린 푸념의 글을 읽고 그의 처지가 하도 딱해서 일단 만나 위로해 주기로 했지만, 며칠 먹을 음식을 싸다 주는 것, 같이 술 한잔 마셔 주는 것, 이야기 들어주는 것, 그리고 돈을 쥐어 주는 것 말고는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부부는 생전 모르는 남에게 연락처를 남기거나 거액의 돈을 빌려 줄 정도로 순진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집에 돌아오니 시간은 이미 밤 열한 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 전날 퇴근 후 낯선이술을 마시기 위해 외출을 한

여자의 남편은 여자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침대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 여자는 지역 자원봉사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전날 만났던 젊은 남자를 도울 방법이 없는지 자문을 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동사무소나 고용센터에서 도와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쪽으로 문의해 보라고 했다. 여자는 젊은 남자에게 보증금 없는 빌라를 소개해 줄 부동산 연락처, 지역 자살방지 상담센터 연락처, 기숙사가 있는 회사들이 참여한 고용박람회 정보 그리고 ○○동행정복지센터 연락처 등을 보냈다.


젊은 남자는 절망적이라고 말하면서도 여자가 보내는 정보마다 순식간에 거절했다. 보증금 없이 월 임대료만 요구하는 빌라를 소개해 줄 부동산은 연락도 해 보지도 않고 그런 빌라는 없다고 단정했고, 고용박람회는 앞으로 배달 일을 계속할 생각이기 때문에 필요 없어했고, 행정 복지 센터는 현재 살고 있는 빌라에서 그날 당장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는 투자금에 넣으려 보증금을 뺐고, 월 세마저 두 달 밀려 쫓겨난다고 했다.), 동에 거주지가 없어서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거라 했다. 


어쩌면 젊은 남자는 한동안 절망 속에 깊이 잠겨 있고 싶은지도 모른다. 말로는 SOS를 외치지만 몸짓으로는 어떤 도움도 거부하고 있었다. 여자는 를 더 이상 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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