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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05. 2022

스마트한 스테이케이션

집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라!

벌써 스테이케이션 4주째 접어들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싶고 아무것도 안 하고 싶으면서도 너무 무료하다. 어떤 때는 돌 볼 가족이 있다는 것이 족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집에 있으면 특별한 일은 아무것도 안 하지만 쉴 새 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 요리, 청소, 빨래, 설거지 등등. 그냥 하지 않아도 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가족들이 모두 일하러 가면 집안일은 자연스레 내 몫이 된다.

 

혼자서 어디라도 가겠다고 말은 해 놓고 막상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나는 필요성에 의해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목적 없고 성과 없는 여행을 무턱대고 하기가 썩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최근 온 가족이 오래간만에 나흘 연휴를 맞았다. 첫째 날은 작은 지역 행사에 같이 다녀왔다. 둘째 날은 집에서 쉬었고, 셋째 날에는 자연봉사를 다녀왔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또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쉬었다.

 

어떻게 보면 마지막 날 일이 있긴 있었다. 가족이 가장 오래 머무는 거실의 분위기를 살짝 바꾸었다. 통유리 거실 창 옆에 두었던 커피 테이블과 의자들을 거실 안쪽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거실 창 옆에는 우리 집 보배들인 키 큰 나무들을 일렬로 나란히 세워 놓았다. 말하자면 나무들과 커피 테이블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나무는 밖으로 그리고 커피 테이블은 안으로. 그렇게 다시 커피 테이블과 의자들을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홈카페가 열렸다. 그곳에서 가끔 남편과 같이 식사할 때가 있지만 아이들은 커피 테이블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홈카페에서 식사를 하거나 간단한 음료를 마실 때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식구 네 명이 같이 기에는 약간 답답한 크기의  아파트이지만 나름대로 펜트하우스이다. 우리 거실에서는 이 도시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 다 보인다. 물론 산 앞으로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보이지만 시선을 약간 위로 두면 여러 산봉우리들과 그위로 파란 하늘이 두 눈에 가득 담긴다. 거실을 넓게 쓰기 위해 4인용 소파를 하나밖에 안 두었는데(말은 4인용인데 사실 두 명 밖에 앉을 수가 없다. 게다가 소파에 누군가 드러누우면 그냥 일인용이다.) 무더운 날씨에 에어컨 가동을 하고 온 가족이 거실에 모일 때면 네 명이 편하게 앉을자리가 부족해서 불편했었다. 두 명은 소파에 앉고, 한 명은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으면, 나머지 한 명은 앉을자리가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비치 의자이다. 쇼핑 앱에 찾아보니, 나름 쿠션도 있고 컵 홀더도 있는 리클라이너 비치 의자가 있었다. 주문하기가 무섭게 다음날 집 앞에 배송되었다. 남편은 상자에 담긴 의자를 꺼내 쿠션과 컵 홀더를 달더니 나에게 앉아 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저녁을 만들어서 주더니 유리컵에 따라온 맥주를 비울 때마다 다시 채워 주었다. 자신이 웨이터라도 된 것처럼. 리클라니너에 앉아 티브이를 보니 거실은 또 홈 씨에터가 되었다.


밤이 되고 기온이 내려가면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끄고 각자 방으로 간다. 그런데 가끔 침대에서 자는 것이 불편할 때에는 거실에서 잠을 청하기도 한다. 거실 구석에는 이불 여러 개가 늘 대기 중이다. 두꺼운 이불을 제일 밑에 깔고 그 위에 베드 퍼를 놓고 또 그 위에 땀이 잘 나지 않는 소재로 만든 얇은 이불을 깔면 전체적으로 꽤 푹신하다. 리 집에서 다른 어느 방보다도 거실은 통풍이 잘 된다.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선풍기 돌아가는 기계음이 들리면 바닷가에서 시원한 파도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거실은 나에게 그렇게 한 밤중에 멋진 캠핑장이 되어 주기도 한다.


최근 브런치 메인에 소개된 글 중에 <우리가 버린 옷의 95프로는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키 큰 아이에게는 길이가 짧고, 계속 살이 찌고 있는 나에게는 허리가 맞지 않는 청바지를 옷장에 쌓아 둔지 꽤 되었기에 못 입는 옷 정리를 시작했다. 옷을 나눠줄  적당한 사람을 찾는 것도 일이고, 또 재활용이 되지 않을지도 모를 옷을 재활용 수거함에 넣기도 그러니, 스스로 처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긴 바지는 잘라서 반바지로 만들어 주고, 남은 바짓가랑이를 가지고 러그를 만들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유튜브에서 전에 헌 티셔츠로 러그 만드는 것을 보았기에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었다. 물론 옷감이 면이 아니라 데님이고, 옷이 티셔츠가 아니고 바지이지만 아무튼 원리는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못 입는 청바지를 다 꺼내 작업을 시작했더니 거실 바닥은 어느새 청바지와 잘라낸 조각들로 가득 찼다. 손재주가 다소 겸손한 내가 어느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거실은 작업실로 변해있었다.


이렇게 내가 사는 곳의 장점을 활용하면 평범한 공간은 카페도 되고, 극장도 되고, 캠핑장도 되고 심지어 작업실도 된다. 예전에는 거실에서 운동도 하곤 했었다. TV를 틀어 놓고 새벽 뉴스를 보면서 훌라후프를 하면 운동하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거실은 필요에 따라 체육관도 될 수 있다. 집순이  집돌이가 아니어도 요즘처럼 여행 다니기 어려운 때에는 스마트한 스테이케이션이 삶의 질을 높인다. 오늘은 아이가 인턴으로 일하는 곳에서 확진자가 나왔다고 하는 바람에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덕분에 밖에서 둘이 같이 점심도 먹고 아이를 직장에 다시 데려다주었다. 아직도 곳곳에서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다. 몇 달 전 대학 동창의 친정 쪽 가족은 한 명도 빠짐없이 코로나에 걸렸고, 그 무렵 고등학교 동창의 남편과 아이도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휴가 중 여행을 할 수 없다면, 스마트한 스테이케이션을 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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