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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l 02. 2022

손절당한 친구의 퇴사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하지 않을까?

직장에서 만난 첫 친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꽤 가까운 친구였다. 같은 조직 다른 지점의 같은 부서에서 일한 계기로 워크숍을 통해 알게 된 친구인데 이후 사적으로도 연락하며 함께 타 지역으로 여행도 다니고 서로가 일하는 지점에도 방문하고 했던 그래도 한 때는 각별한 사이였다. 심지어 서로의 집도 오갈 정도였으니 직장을 통해 알게 된 사이로는 꽤 친밀도가 있었다고 본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타 지점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도 우리는 두루두루 친했고 그 친밀감을 토대로 부서의 업무를 함께 하던 중 어느 순간 일이 틀어졌다. 정녕 직장에서의 우정이란 존재할 수 없는가? 협업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그중 가장 친하게 여겼던 그녀가 다른 동료의 게으름에 대해 불평을 일삼다가 심지어 그녀를 철저히 따돌리려고 하면서부터였고, 일과 우정을 모두 잃고 싶지 않았던 나의 욕심은 그 깨어진 관계를 최대한 오래 붙들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나와 그녀의 타깃을 손절해 버렸다.


생각해 보면 부서 간의 협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싸늘했다.  부서 내에서 몇 번 안 되는 승진의 기회를 둘 다 놓친 그 시점에서였던 것 같다. 나보다 몇 년 연차가 높은 그녀가 자신보다 이력이 화려해 보이는 나를 시샘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친구 중 누가 승진이 되든 축하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순진함이 오만이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그때 그녀가 승진이 되었다면 나는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기에 한 번도 내가 오만했다고 생각지 못했다.


그녀는 경고도 없이 나와 다른 동료를 손절했고, 그 이후로도 몇 년 동안 온갖 행패를 부렸다. 정말 내가 저런 사람과 어울렸었나 싶을 정도였고 그녀의 전문성 또한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사이 그녀와의 모든 소식은 차단되었고 그녀의 연락처마저 하나 둘 지워졌다. 시작은 그녀가 한 것이지만 나머지 반은 내가 결정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갑자기 확 변해 버린 그녀가 부리는 온갖 만행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되돌아보면 직장 생활의 반 정도는 그녀와 함께 했었다. 그 기간의 삼분의 일은 서서히 친해졌고, 다른 삼분의 일은 뜨겁게 친했고, 나머지 삼분의 일은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그녀와의 꼬여버린 관계는 나를 한참 동안 힘들게 했다. 사람을 많이 가려 사귀는 나는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온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 또한 나의 오만과 아집일지 모른다. 내가 친구라고 명명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를 떠나는 것은 너무도 애석한 일이다.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겠지만 말이다.)


휴가의 무료함을 달래러 직장에 갔다가 쌓여 있는 이메일을 하나 둘 읽기 시작했다. 그중 제일 밑에 그녀가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그녀가 퇴직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일한 지 20년도 안 되었고, 아직 퇴직할 나이가 된 것도 아니니 사실상 퇴사였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소식을 알린 시점이었다. 직원들의 휴가가 시작되는 날 직전 그러니까 업무의 마지막 날  밤이었다. 그녀는 이메일의 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고, 사실상 마지막 통보를 한 것이다. 이메일 내용 역시 형식적이었다.


직장에서 사귄 나의 첫 번째 친구는 몇 년 전 정식으로 퇴직을 했고, 그 이후 삼 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친구는 이메일 하나 남기고 이렇게 떠났다. 나이가 더 들면, 내가 더 어른이 되면 이런 이별에 담담해질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아직 이사 준비를 하며 한국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의 연락처를 뒤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개인 이메일도 전번도 SNS 계정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녀가 사는 곳이었다. 그녀가 이미 출국했을지도 모르지만 같은 도시라면 무작정 찾아가 만나보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사는 도시는 꽤 먼 거리이고, 그냥 찾아가기에는 너무도 무모하다.


<한 때 친하게 지낸 친구를 얼굴 한 번 안 보고 보낼 수 없다>와 <이미 끝난 시절 인연이다>는 생각이 터미널의 상행선과 하행선 기차들처럼 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한다. 그동안 나와 그 친구의 관계를 지켜본 딸은 그냥 잊으라고 했다. 남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비록 때였지만 둘도 없이 소중했던 친구를 인사도 없이 보내는 것이 불편한 나! 어쩌면 이마저도 이기심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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