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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Jun 30. 2022

새로운 깻잎 논쟁: 족발 전쟁

"쓰레기를 왜 개한테 주려고 하세요?"

깻잎 논쟁은 아마도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시초가 어딘지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처음 깻잎 논쟁에 대해 듣게 된 것은 부부동반 모임에서 노사연 씨 친구( 아니면 이무송 씨 친구의 부인)의 깻잎 반찬을 노무송 씨가 쉽게 뗄 수 있도록 잡아 주면서 그 부부에게 갈등이 있었다는 일화에서였다. 우리 부부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 이전 남편과 부부동반 모임에 갔을 때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남편이 다른 젊은 미혼 여자의 술잔에 담긴 술맛을 본다며 그녀와 술을 나눠 마신 적이 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사실 황당하고 쪽팔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남편이 술을 엄청 좋아하고 코로나 이전이라 단순히 술맛이 궁금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생각되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 남편이 부인이 화장실 간 사이에 젊은 여자 집적거리는 격 떨어지는 사람 같아 보여 엄청 민망했다. 그래서 남편이 다른 여자의 깻잎을 잡아 주는 게 신경 거슬리고 황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깻잎 논쟁은 보는 관점에 따라 불쾌해하는 부인의 입장에 동의할 수도  있고, 아무 의미 없이 남에게 베푼 친절로 오해를 받은 남편의 입장에 동의할 수도 있다.


최근 중고 앱 동네 코너에 <○○동 견주님 중에 족발뼈 필요하신 분 연락 주세요>라는 글이 족발 뼈 사진과 함께 올라왔다. 얼마 되지 않아 "족발 뼈는 강아지에게 해로울 것 같습니다"라는 댓글이 하나 올라왔고, 이후에 "버리세요. 남이 먹던 음식을"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후 두 번째 댓글을 단 이와 그 글을 올렸던 사람 사이에서 여러 번의 논쟁이 오갔다. 논쟁의 요는 이렇다:

글 올린 사람: 동네 사람도 아니고 견주도 아닌데 족발이 필요하지 않음 남이 좋은 의도로 올린 글에 태클 달지 말고 그냥 지나쳐라. 어차피 족발 필요한 사람 없으면 폐기 처분될 거다.

댓글 단 사람: 강아지가 먹으면 해로운 남이 먹던 음식물 쓰레기를 나눈다는 글이 불쾌해서 댓글 달았다.


여기서 잠깐! 여러분은 동물에게 뼈를 나누는 글을 올린 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자신과 관련 없는 글에 부정적인 태도로 댓글 단 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것이 과연 글 올린이와 댓글 단 사람이 하루 종일 열내며 싸울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일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족발이 너무 먹고 싶었던 어떤 사람이 족발을 시켰으나 살점 밖에 먹지 못하고 따라온 뼈와 발에 붙은 고기를 동네 개에게 나눠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중고 앱 동네 생활 코너에 글을 올렸다. 그 글을 보고 강아지의 복지에 민감한 이가 발끈해서 태클을 걸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위 사건에서 뼈를 나눠주겠다고 글을 올린이다. 나의 생각다시 정리하자면 이렇다:

개는 뼈를 좋아한다. 견주가 뼈를 좋아하는 개에게 살은 잘 발라서 주고 뼈는 개가 가지고 놀게 하면 좋겠다.

댓글 단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사람 음식은 개에게 해로울 수 있고, 개가 사람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사료를 잘 안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어떤 개는 겨울이고 여름이고 연중 밖에 묶여서 있고, 애견 가게 상자 안에 담긴 강아지 중에는 심지어 자기 똥을 먹는 녀석도 있다. 그런데 개에게 고기와 뼈를 나눔 하는 게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물론 배고픈 이웃과 불쌍한 동물이 옆에 있다면 나는 사람을 먼저 돌볼 것이고, 예로부터 음식을 버리는 것은 죄라고 교육을 받은 옛날 사람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세상에는 크기, 종, 족보, 생활환경, 용도가 다른 많은 종류의 개들이 존재하고 그런 개들의 주인 또한 각양각색임에도 불구하고, 개는 아주 작고 귀여운 강아지 또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서 지갑으로 키워야 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그 기준에서 모든 걸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관심과 사랑을 인류(사람들)에게도 베풀면 어떨까 싶다.


두 번째 댓글에 반응을 하면서부터 일이 꼬일 거라는 건 짐작을 했다. 그때부터 벌써 나는 지는 게임을 한 거다. 불쾌해도 그냥 무시했어야 했다. 그냥 그런 사람은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 했는데 쓰잘 떼기 없는 일로 설왕설래하며 황금 같은 하루를 낭비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토끼에게 당근을, 개에게 뼈를 나눠 주는 것이 아무리 당연하게 여겨져도 이제 다시는 그런 문제로 전쟁을 하고 싶지 않다. 시간은 금이니까!


기존의 깻잎 논쟁은 가족이 아닌 남녀 사이에 어디까지의 친밀함이 허용되는가를 다뤘다면 위에서 언급한 족발 전쟁은 동물 복지에 대한  인간의 관여가 어느 선까지 용납되는가의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위의 내용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동물의 복지를 운운하기 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를 먼저 지켜야 한다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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