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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Apr 16. 2023

바람으로 키운 자식

엄마와 나

나의 나이테가 반 세기를 살았음을 보여주고 있는 요즘 문득문득 내 나이 때의 엄마가 떠오른다.


우리 아버지는 의처증에 알코올 중독이었다. 이 두 가지 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우리 가족의 서사 드라마를 다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유년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평범하지 않은 장면들로 얼룩졌고, 우리 엄마의 삶은 불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우리 칠 남매를 버리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불행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가 행복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 시점이 엄마의 나이테가 반세기를 향하던 시기였다. 우리 가족을 모두 불행하게 했던 원흉에게 사망선고가 내려진 이후다. 그의 사망 선고는 알코올 중독에서 얻은 간경화였다. 철없는 나는 그때 사망 소식을 듣고 순간 울컥했었다. 그의 사망으로 나머지 가족들이 해방된 이후 엄마는 늦바람이 났다. 유부녀도 아니니 뭐 굳이 바람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간 수없이 들어왔던 <바람난 년>이라는 오명을 과감히 집어던진 것이다. 엄마는 카발레에 가서 춤도 추고 그곳에서 늙은 남자를 만났다. 그때는 '왜 하필 가진 것도 없는 늙은 남자를 만났을까?' 싶었지만,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딸린 자식이 많은 엄마에게는 아마도 그 남자가 편했었나 보다. 그렇게 엄마는 늦바람이 났고, 낯선 늙은 남자와 동거를 해야 하는 청소년기의 나와 아직 출가하지 않은 다른 형제들은 여전히 불행했다. 그 시절 엄마는 행복했을까? 엄마가 조금이라도 행복했었길 바란다. 엄마는 그렇게 늦바람으로 아직 남아있는 세 자식을 키웠다.


우리 남편은 의처증도 없고 알코올 중독도 아니다. 다만 직장 때문에 우리 부부는 자주 떨어져 생활한다. 어떤 때는 몇 년씩 떨어져 살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몇 개월씩 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대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도 이제 그런 생활에 많이 적응을 한 편이다. 가끔은 우리 부부가  아이를 각각 한 명씩 데리고 살 때도 있고, 내가 둘을 다 데리고 있을 때도 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있든 떨어져 있든 성실하게 일하고 결혼 서약을 잘 지키고 살고 있다. 남편도 아이들도 자신들의 삶을 각각 살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약간의 행복과 약간의 불행이 버무려진 그런 삶을 산다. 나 또한 그렇다.


나에게는 또 다른 자식들이 있다. 일요일마다 잊지 않고 내가 특별히 돌보는 아이들인데 그 아이들을 보면 행복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아이들을 위해, 커튼이 없는 거실의 창문을 활짝 열고 물병을 채웠다. 내가 햇볕과 바람과 물로 키우는 자식들이다. 그중에서도 매일매일 바람으로 키우는 특별한 아이들이다. 나를 미소 짓게 만드는 나와 바람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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