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부산 여행을 갔다. 딸을 먼 곳으로 유학 보내기 전에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막상 부모와 떨어져 생활한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는지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딸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딸이 가고 싶어 한 곳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놀이동산이었다. 움직이는 것만 타면 멀미가 심해서 놀이 기구라고는 일정한 속도로 한 방향으로움직이는 것만 탈 수 있는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사진사를 자처했다. 솔직히 말해서 뭐 사진 찍기를 대단히 좋아해서가 아니라 다른 할 일이 딱히 없었다. 부산에 있는 놀이동산의 규모는 무척 작았다. 성인 네 명이 한 시간을 놀고 나니 더 이상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도 종일권을 끊었기에 일단 점심을 먹고 다시 탈만한 것이 있나 찬찬히 둘러보기로 했지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점심 먹고 바로 퇴장했다.
놀이동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닷가가 있었다. 바닷가에 가까이 갈수록 비릿한 소금 냄새가 나를 습격했고 나는 기쁜지 불쾌한지 분간할 수가 없었지만 일단 함성을 질렀다. 내륙인이 바다와 만나는 순간의 감동을 표현해야 할 의무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가니 해수욕장이 있었다. 해운대처럼 넓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걸을 수 있는 모래사장이 물과 맞닿아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일단 신발을 갈아 신고 바다로 달려들었다. 흐린 날이라 물이 많이 차가웠다. 늦게 시작한 사춘기를 오래 달고 있던 딸은 최근에는 스타일이 또 변하고 있다. 갑자기 내가 보기기에도 부담스러운 너무 단정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여행을 마치고 온 이후에는 머리도 손수 짧게 잘랐다. 그러려면 미용실에 가자고 하던지...) 딸의 해변가 패션은 통이 넓은 긴 청바지였다. 그걸 본 순간 범생이 부모도 엄청 답답하겠음을 실감했다. 바닷가 패션으로는 최악이었다. 긴 청바지를 두 손으로 잡고 있는 게 여간 답답하지 않아 결국 바지를 접어 올려 주었다. 딸이 부쩍 어린애 짓을 하고 있다. 그런 애가 측은하면서도 열이 받힌다. 대학 가지 말라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소한의 도움으로 대학 공부를 마친 나에게 딸의 고민들은 사실 너무 사치스럽게 여겨진다. 대학교 수업료 걱정 할 것 없이 본인이 원하는 사립대에 가라고 입학과정 하나에서 열까지 다 도와주는 부모가 있는데 왜 저렇게 우울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부모마저 자기 새끼가 미워 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정 떼려고 저러나 보다 싶을 정도로.
해변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호텔 수영장에 수영하러 갔다. 모자를 착용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에 호텔 건너편에 위치한 CU에서 모자를 두 개나 더 사야 했다. 수영복에 쓴 야구모자가 통 어울리지 않았다. 가족들은 곧 흥미를 잃었고, 환복을 한 후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남편이 호텔 내에 있는 식당을 추천했지만 (어차피 계산은 내가 할 거라) 너무 비싸지 않은 호텔 밖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근처 식당을 다 돌아본 후에 결국 양식과 돈가스를 같이 하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양이 너무 많아서 나는 또 고민을 해야 했다: '음식을 남기는 것, 욕심 내서 양보다 많이 먹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큰 죄일까?' 음식을 남기는 것은 인류와 환경에 대한 죄를 범하는 것이고, 많이 먹는 것은 자신에 대한 죄이다. 가난하게 자라 음식을 귀하게 여기는 나는 늘 자기 자신에 대한 죄를 짓는다. 돈도 내가 내고 벌도 내가 받는다. 그놈의 가족이 웬수다.
호텔에서 <나는 솔로 154회> 재방을 본 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10층 다른 방에서 자고 내려 온 남자들과 로비에서 만나 일단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으며 하루 일정을 의논했다. 활어회를 먹기 위해 해녀촌으로 가고 싶었지만, 가족들 누구도 회를 먹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남편은 되도록 운전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남편의 동료가 최근 부산에 갔다가 건널목에서 행인을 치는 사고를 냈기에 더 몸 사리는 듯했다.) 바닷가에서 회도 먹지 못하는 가족들의 입맛이 야속했고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근처 오션뷰가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나가 카페 뒤편에 있는 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공원 정상에 있는 정자에서 보는 오션뷰가 사실은 더 좋았다.) 해수욕장에 다시 가서 해변가를 걸었다. 그리고 부산 여행의 마지막 일정인 아홉산으로 향했다. 아홉산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틀 동안 부산에서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 남은 연잎밥은 챙겨서 왔다. 음식을 버리지 못하는 나의 불편한 양심을 어찌하랴! 아홉산 숲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시간 여행을 하던 세트장에 갔을 때였다. 거기서 시간 여행하는 나를 슬로모션 비디오로 남겼다. 시시하게 끝나버린 부산 여행 중 유일하게 나를 위한 코스였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늦은 오후였다. 확 트인 거실에서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가 여행 상품 광고를 보았다. 동남아 여행이 1인 30만 원인가 되었다. 몇 박 며칠간의 여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항공비, 호텔비, 식비를 포함한 1인 가격이 었다. 우리 가족 1박 2일 부산여행의 총비용은 백만 원에 달했다. 3인이 동남아 여행을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산물을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행복이라는 게 뭐 대단한 것인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또한 인생의 큰 즐거움이지 않은가? 결국 배달앱으로 멍게와 전복을 1인분씩 주문했다. 어차피 나 혼자 먹을 것이기에. 거실에서 영화를 보는 가족이 들으라고 큰 고리로 냠냠거리며 혼자 배불리 먹었다. (하지만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멍게는 너무 맛있었고, 처음 먹어 본 전복회는 좀 딱딱한 식감이었다. 산낙지는 도무지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주문하지 않았다. 옛날 엄마가 도마 위에서 손수 썰어 주셨던 멍게가 늘 그립고 내가 아는 해산물 맛 중 최고의 맛이다. 결국 나는 멍게를 먹었다. ("언젠간 먹고 말 거야!" 치토스 광고의 치타처럼)
여행 후 돌아오면 늘 느끼는 거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벗어나지 않아도 여행에서 해 본 경험들의 대부분은 사는 곳에서 다 할 수 있다. 이곳에 해변가는 없으니 그 부분은 여행지에서만 가능했다. 큰 놀이동산도 있고, 산도 있고, 맛집도 많고 카페도 많다. 심지어 큰 경비를 들이고 난 후 집에 돌아오면 더 허탈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돈백만원이 뭐 그리 큰돈이겠냐마는 곧 딸 유학 보내려면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입맛은 까다롭지만 먹는 거에 진심인 우리 가족은 여행 경비의 상당 부분이 식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산물을 먹지 못하고 돌아온 허무함을 내가 사는 도시에서 충족시킬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도시에서 보낸 시간이 이제 유년기 고향에서 보낸 시간만큼 길어졌다. 유년기의 절반은 내가 기억할 수 있기 이전의 시간이었으므로 어쩌면 성인이 된 이후 보낸 이 도시가 나에게는 더 의미심장한 곳이 아닐까? 이곳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계속 이방인으로 남겠지만, 그래도 나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이 도시가 가끔은 고맙게 느껴진다. 그토록 먹고 싶었던 멍게의 맛은 슬라이미 옛 새티스파잉 (slimy yet satisfying)! 내가 사는 이 도시 또한 나에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