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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천정에 물벼락

by 별똥꽃

삼일 연휴를 앞둔 금요일 퇴근 시간 즈음이었다. 퇴근을 하기 위해 하고 있던 서류 정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사무실 밖에 인기척이 들리고 화재경보가 요란하게 울렸다.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왼쪽 복도의 길목에 위치한 창고 앞에 시설 관리부 소속 직원 두 명이 서 있었다. 그중에 한 명은 물에 젖은 채 소리 없이 울고 있었고 다른 한 명도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직원이 뭔가를 창고에서 꺼내려다 실수로 화재 방지 장치를 건드렸다고 했다.


찬물인지 뜨거운 물인지 알 수 없는 강한 물줄기가 창고문 밖으로 폭포수처럼 넓게 쏟아져 내리며 증기를 품어내고 있었다. 그 광경이 심상치 않아 차마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시설 관리 직원 중 한 명이 어딘가에 전화로 연락을 하는 사이 천정에서 물은 쉴 새 없이 쏟아져 바닥에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신속한 판단이 필요했다. 마침 모여 있던 환경미화부 직원들에게 하수구가 있는 화장실로 물을 보내자고 제안했더니 오히려 문을 닫고 화장실에는 하수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럼 바닥에 고인 물을 퍼서 양동이에 담고 그 물을 화장실 싱크대에 버리자고 했다. 그래서 환경미화부 직원 몇 분과 나는 바닥에 있는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천장에서 물은 쏟아져 내렸고 천정에서 쏟아진 강물은 어느새 건물 복도 끝까지 흐르고 있었다 . 아픈 허리 걱정할 겨를도 없이 물을 계속 퍼 담기를 삼십 분 가량 했을 즈음에 시설 관리부 다른 직원이 와서 천정에서 흐르는 물을 막았다. 그제야 평직원 중 한 명이 물 퍼는 것을 돕기 시작했고 관리부 직원들은 왼쪽 복도에 고인 물을 퍼 담기 시작했다.


바닥의 물이 80-90% 정도 해결된 후에는 처음 부터 물난리를 바라만 보고 있던 다른 직원도 몇 명 와서 청소를 거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폭포수가 터진 창고의 맞은편 창고에는 전산장비가 있었지만 다행히 초기대응을 잘 한 덕분에 장비가 물에 잠기지는 않았다. 누수가 시작된 지 한 시간가량 후에 다행히 바닥에 있는 물은 대부분 치워졌다. 물난리 속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1. 하염없이 구경하기

2. 여기저기 분주하게 돌아다니기

3. 사진 찍기

4. 퇴근하기

5. 물 퍼내기


그렇게 한 시간가량 물을 퍼내 바닥에 물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퇴근을 했다. 그리고 삼 일 연휴 중 이틀 동안 허리가 아팠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을 했다. 아무도 물난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출근 삼일 후 갑자기 전 직원회의가 있었는데 물난리를 초래했던 직원이 전근을 간다고 발표를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하지만 아무도 물난리나 물난리 이후 전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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