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슬픔 먹는 하마
우리 집에는 늘 물 먹는 하마가 있다. 특히 여름철 장마가 지기 전에 대량으로 구매해서 구석구석 물 먹는 하마를 놓아둔다. 계절이 몇 번 바뀌고 하마가 더 이상 물을 먹을 수 없을 때에도 불쌍한 하마들은 구석에 처박혀 방치되곤 한다. 하마가 열심히 물을 먹듯이 슬픔을 먹고사는 동물이 우리 집에 있다. 그 하마를 구석에 처박아 둔 바로 나라는 동물이다.
나라는 동물이 언제부터 슬픔을 먹었는지 잘 기억해 보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작년 여름 그 사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시월말 무리한 스케줄로 몸이 너무 아팠을 때였을까? 십일월 진상 고객들 때문에 마음이 찢어졌을 때였을까? 아니면 십이월 국내에 닥친 많은 재앙과 함께 들려온 시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난 후였을까? 아니면 회사에 물난리가 나서 내가 팔 걷어 부치고 물을 퍼내는 시각 시어머니의 폐는 물에 점점 잠겨서 결국 사망에 이른 정월 초 무렵이었을까?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한 동네 안면이 있는 젊은 분도 돌아가셨고, 며칠 후에는 남편 어릴 적 친구의 모친도 돌아가셨다.
그런데 나의 슬픔이 최근 끊임없이 나를 슬프게 한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나는 늘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오누이를 키우는 동안 내 어깨에 짊어진 짐들이 너무 무거워서 슬펐고, 내가 기댈 곳 없는 친정에서는 그 와중에 오히려 나에게 기대려고 해서 슬펐고, 외국에서 당한 인종차별이 슬펐고, 가난한 대학 시절이 슬펐고, 내 방한칸 없었던 중고등 학교 시절이 슬펐고, 너무 배고팠던 유년기 시절이 슬펐다. 어쩌면 나는 태어난 후로 줄곧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슬픈 나를 구제하려면 미련 없이 떠나야 함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미련한 나는 계속 미련의 끈을 붙들고 있다. 행복은 밥을 먹여줄 수 없지만 돈은 밥을 먹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슬픔의 바퀴는 늘 쉴 새 없이 구른다.
이혼캠프에 걱정 부부가 있었다. 상담사가 걱정이 많은 아내에게 늘 불행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일을 하고 종종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지만 그녀처럼 항상 불행의 옷을 입고 사는 듯하다. 아무도 나의 불행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나조차 나의 불행에 관심이 없다.
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겼고 나의 몸도 너덜너덜 성한 곳이 없지만 삐거덕삐거덕 슬픔의 수레를 열심히 굴리고 있다. 끝까지 살아남는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