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일지

제4화 투명인간

by 별똥꽃

어렸을 적에 나는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고 이곳저곳을 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은 나를 볼 수 없는데 나는 그들을 볼 수 있고, 짖꿎은 장난도 마음껏 칠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싫었던 어린아이는 자라서 어느덧 반 백 살이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어린 시절의 진지하지 못했던 그 꿈을 이루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투명인간이 되어있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해 보기도 전에 일찍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나는 늦은 나이에 나름 전문직을 갖게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준비하고 맺은 결실이라 나는 내 일을 진심을 다해 했다.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지만 나는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머물러 있다. 나는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지만 사실상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힘든 일은 다 떠맡아 하고 있고 내가 성취한 것은 철저히 무시를 받고 있다.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듯 아무도 응원하지 않고 언급하지 않는다.


최근 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갔더니 내 사무실 문에 붙어 있던 명함과 사진이 떼어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왜 떼어져 있었는지에 대해 시원하게 설명을 하지 않는다. 지난여름에는 더 심한 일들도 있었지만 차마 여기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직장에서의 괴롭힘은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이런 곳에서 나는 왜 힘겹게 견디고 있는가? 하지만 직장 괴롭힘을 증명하기란 참 힘든 일이다. 피해의 정도가 육안으로 확인돼서 범법행위라고 증명할 수 있지 않다면 피해자는 섣불리 행동을 취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속한 조직에서 나는 소외계층이다.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면서도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나름 복잡하다. 내가 무너지기를 끊임없이 소망하는 저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선사하고 싶지 않다. 쉽게 손을 놓기에는 금전적 손실 또한 너무 크다. 그래서 나는 매일매일 구차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직이라는 미명하에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한 채 직장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그렇게 견뎌온 시간이 너무 길어서 이제는 그들의 행동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듯 능동적으로 무시한다. 그래서 그들과 나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가끔은 너무 아프다. 지난여름 그 일이 있은 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한동안 심리 상담을 받았다.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달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몸이 아프면서 나는 다시 무너졌다. 나는 다시 신을 찾았다.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위로를 기대하지도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산 송장같이 몇 달을 보냈다. 나와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외면한 채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올해도 투명인간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는 살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우울증 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