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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May 05. 2019

국어 선생님

짝사랑

나는 다니던 여중의 바로 뒤에 있는 여고에 입학했다. 여고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고에 총각 선생님들이 여러 명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안경  국어 선생님이 여고 언니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고에 입학을 하고  국어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선생 연세 우리보다 11살 많으셨던 걸로 기억된다.


그 시절 회색 양복에 까만 목티를 입고  얼굴로 수업 중간중간 창밖을 바라보시던 선생님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국문과를 졸업하시고 일 년 전 우리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여고 시절 또래 남학생들을 아무도 만날  없고, 학교에 남자라곤 총각 선생님들밖에  계시니 나 또한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국어 선생님을   것이다. 그때 우리 학교에는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애들이 굉장히 많았고, 또 다른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국어 선생님 파, 수학 선생님 파, 일어 선생님 파 등으로 나뉘었다. 일 학년 때 나와 단짝이었던 친구는 불여시 같은 아이였는데, 그 애도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해서 우리는 종종 국어 선생님의 출퇴근을 커튼 뒤에 숨어서 같이 훔쳐보기도 하고 그 선생님에 관한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저녁 자율학습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추석 명절에 선생님께서 서울 자택에 안 가신 적이 있었다. 친구와 나는 명절 음식을 싸가지고 선생님 자취하시던 댁에 방문해서 티브이를 같이 봤던 생각이 난다. 수줍음이 많은 나에 비해 내 백여시 단짝 친구는 어른들하고도 말을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내성적인 나는 선생님께 좋아한다는 고백 대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다-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직접 전달하지도 못하고 다른 친구한테 시켜서 말이다. 아마 그때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선생님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내가 선생님과 결혼하게 된다면 그깟 열한 살 나이 차이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 쓴 편지에 "좋아해요! 사랑해요!" 뭐 그런 직설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 '어린 제자가 쓴 편지를 받고 선생님께서 어떤 기분이 드셨을까!' 궁금해진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등수별로 나눠서 적이 좋은 아이들은 따로 모아서 자율학습 대신에 과학반 수업이란   적이 있었는데, 그 과학반 수업 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 단어에 대해 정의하는 법을 가르치신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 예로 드신 단어가 "외사랑"이었고,  학생들이 선생님께 노래 불러 달라고 르면 <웨딩케이크>라는 노래를 부르셨던 걸로 봐서 아마도 혼자 사랑했던 여자가  자와 결혼 것이 아닐까라고 짐작했었다. 그때는 선생님의 그런 상처마저도 내가 다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 수업 중 창밖 바라보시는 선생님이 멋있다고만 생각했는데, 내가 교편을 잡고 보니 그게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알게 되었다.


국어 선생님은 내가 여고 이학년 겨울방학을 며칠 앞둔  불의의 사고 영영 학교에 다시 오시지 못했다. 늦게까지 졸업앨범 만들던 한 아이를 집에 바래다주고 돌아오 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선생님 사고 소식을 듣고 내 단짝 불여시 친구하고  나는 대학에 들어간 후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우린  약속을 지켰는데, 몇 년  우리가 선생님을 찾아뵈었을 때는 의식도 없으시고 어느 절간에서 선생님의 모친 간병을 받고 계셨다. 우리가 다녀가고 얼마 안 돼서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셨다고 들었. 교통사고가    짝사랑했던 국어 선생님 나이가 겨우 스물아홉 살이셨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 선생님을 꿈에서  적이 있다. 병석에서 일어나셔서 다시 학교로 오셨는데 기억상실증에 걸리셔서 학생들 가르치시기가 힘이  그런 상황이었다. 사고 이전에 내가 기억하는 선생님 모습과는 전혀  모습이지만 그렇게라도 선생님을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다. 그 시절 어린 나의 눈에 선생님은 한없이 멋진 분이셨지만, 이제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그다지 멋있지도 내가 결혼을 생각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 우리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셔서 일찍 세상을 저버리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지신 여고 시절 국어 선생님을 내 망각의 샘에서 잠시 꺼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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