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회색양복에까만목티를입고흰얼굴로수업중간중간창밖을바라보시던선생님이참멋있다고생각했다.고대국문과를졸업하시고일 년전 우리 학교에서교편을잡으셨다.여고시절또래남학생들을아무도만날수없고, 학교에 남자라곤총각선생님들밖에안계시니 나 또한 사춘기호르몬의영향으로국어선생님을짝사랑하게된것이다.그때 우리 학교에는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애들이 굉장히 많았고, 또 다른 선생님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국어 선생님 파, 수학 선생님 파, 일어 선생님 파 등으로 나뉘었다. 일 학년 때 나와 단짝이었던 친구는 불여시 같은 아이였는데, 그 애도 국어 선생님을 짝사랑해서 우리는 종종 국어 선생님의 출퇴근을 커튼 뒤에 숨어서 같이 훔쳐보기도 하고 그 선생님에 관한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며 저녁 자율학습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추석 명절에 선생님께서 서울자택에 안 가신 적이 있었다. 친구와 나는 명절 음식을 싸가지고 선생님께서자취하시던댁에 방문해서 티브이를 같이 봤던 생각이 난다. 수줍음이 많은 나에 비해 내 백여시 단짝 친구는 어른들하고도 말을 잘하는 그런 아이였다. 내성적인 나는 선생님께 좋아한다는 고백 대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다-편지를 써보낸 적이 있다. 직접 전달하지도 못하고 다른 친구한테 시켜서 말이다. 아마 그때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선생님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내가 선생님과 결혼하게 된다면 그깟 열한 살 나이 차이는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 쓴 편지에 "좋아해요! 사랑해요!" 뭐 그런 직설적인 표현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 '어린 제자가 쓴 편지를 받고 선생님께서 어떤 기분이 드셨을까!' 궁금해진다.
우리학교에서학생들을등수별로나눠서성적이좋은아이들은따로모아서자율학습대신에과학반수업이란걸한적이있었는데, 그 과학반 수업 시간에 국어 선생님께서단어에대해정의하는법을가르치신적이있다.선생님께서예로드신단어가"외사랑"이었고, 가끔학생들이 선생님께 노래 불러달라고조르면<웨딩케이크>라는노래를부르셨던걸로봐서아마도혼자사랑했던여자가다른남자와결혼한것이아닐까라고짐작했었다. 그때는 선생님의 그런 상처마저도 내가 다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는수업 중창밖을바라보시는선생님이멋있다고만생각했는데,내가교편을잡고보니그게자유에대한갈망이라는걸알게되었다.
국어선생님은내가여고이학년겨울방학을며칠앞둔날불의의사고로영영학교에다시오시지못했다.늦게까지졸업앨범을만들던 한 아이를집에바래다주고돌아오시는길에교통사고를당하셨다.선생님사고소식을듣고내 단짝 불여시친구하고나는대학에 들어간 후선생님을꼭찾아뵙기로약속했다.그리고우린그약속을지켰는데,몇 년후우리가선생님을찾아뵈었을때는의식도없으시고어느절간에서선생님의모친께간병을받고계셨다.우리가다녀가고얼마안 돼서선생님께서는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교통사고가났을때내가짝사랑했던국어 선생님나이가겨우스물아홉 살이셨다.
세월이많이흐른 후선생님을꿈에서뵌적이있다.병석에서일어나셔서다시학교로오셨는데기억상실증에걸리셔서학생들가르치시기가힘이든그런상황이었다.사고이전에내가기억하는선생님모습과는전혀다른모습이었지만그렇게라도선생님을뵐수있었다는것이 다행이다.그 시절 어린 나의 눈에 선생님은 한없이 멋진 분이셨지만, 이제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그다지 멋있지도 내가 결혼을 생각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 우리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셔서 일찍 세상을 저버리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지신 여고 시절 국어 선생님을 내 망각의 샘에서 잠시 꺼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