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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똥꽃 Sep 18. 2019

그때 왜 그랬어요?

두 달 간의 휴가가 끝나갈 무렵 같은 일을 하는 친구와 부산에 갔다. 바닷가 바로 옆에 있는 절을 보고, 부산에 갈 때마다 들르는 자갈치 시장에 갔다. 딱히 생선회를 좋아하지도 않고, 다른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또 그곳을 찾았다. 시장 속 상인들의 집요한 권유를 외면하고 도망치듯 건물 밖으로 빠져나와 건물 뒤 바다를 마주했다. 카메라를 꺼내서 이번 부산 여행에도 가보지 못한 벽화마을과 바다 위를 분주히 오가는 갈매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바다 저너머로 빌딩들이 보이고 그중에 한 건물에 붙은 배너에 적힌 글이 시선을 끌었다: "그때 왜 그랬어요?"


어쩐지 가슴속을 파고드는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질문이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싶은 말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5년간의 침묵 끝에 그가 나를 찾아왔었다고 한다. 꽃 한 다발을 안고서. 우리 엄마는 그에게 내가 이미 결혼을 했다고 그만 잊으라고 했단다. 한참 후에 전화로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상상 속에서 그려지는 그때의 장면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비통하다. 나의 결혼 소식을 전하는 엄마의 심정도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그의 심정도. 그리고 엄마와 그가 대화를 나누는 순간 그 두 사람 사이의 나의 존재는 그가 들고 온 꽃다발 마냥 어색했을 것이다.


그가 나를 찾아오기 전 5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왜 단 한 번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까? 스마트 폰이 있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편지를 보낼 수는 있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로 찾아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우리 엄마에게 내 소식을 더 일찍 물어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거나 이미 결혼을 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을까? 친정집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들었을까? 설령 내가 그 당시 사귀는 사람이 없었거나 미혼의 상태였어도 그를 뿌리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까?


그가 나를 찾아온 그날 이후로 더 많은 세월이 흘렀고, 우리는 헤어진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제 다시 만날 이유도 만날 일도 없겠지만, 그래야만 서로에게 좋겠지만, 언젠가 그를 우연히라도 만나게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때 왜 그랬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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