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

by 이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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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9)



 올 1월, 전자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좋지 않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몇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자꾸 지금까지 총 몇 %를 읽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아까 48%였으니 지금은 52%쯤 되었겠지, 생각하고 확인해보는 일도 잦다.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언젠가는 끝에 도달하는 법인데도 그렇다.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나는 가끔 이게 신기하다.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책이 끝이 난다든지, 계속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착한다든지 하는 것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가벼운 행위들을 하다보면 제법 큰 무언가를 달성하게 된다는 점이.)


 웃긴 건 이 버릇을 인지한 뒤로, 종이책을 읽으면서도 같은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다. 종이책은 전자책과 달리 몇 %인지 숫자로는 알 수 없으니, 왼손에 읽은 종잇장을, 오른손에 남은 종잇장을 껴서 그 두께를 눈으로 가늠해보는 것이다. 많이 남았다고 읽기 싫어지는 것도, 조금 남았다고 아쉬워지는 것도 아니면서.


 독서라는 행위에 100%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겠고, ‘성취감’이 눈에 보여야만 움직일 기력을 얻는 나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어쩌면 이 버릇이 내게 일종의 휴식-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나는 평상시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화장실도 자주 가는데, 언제부턴가 일하다가 ‘진짜 화장실에 가고 싶은’ 때가 아니라 ‘잠깐 쉬어갈 만한’ 타이밍에 화장실에 간다는 점을 깨달았다. 꼭 흡연자들이 잠깐 머리 식히자며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것처럼. (이건 다른가?)


 일부 프로게이머들이 긴박한 상황 도중 게임과 관계없는 키를 반복해서 누르는 게(예를 들어 롤을 하는 도중 ESC 키를 자꾸 누른다든지) 아주 바쁜 상황 속에서 상대적으로 덜 몰입해도 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시야를 찰나만큼 차단하며 긴장을 해소하는 무의식적 행위가 아닐지 해석한 글을 본 적 있는데, 바로 그런 역할처럼 말이다.


 조용한 환경에서 눕듯이 기대 앉아 책을 읽는 게 뭐 그리 긴장을 완화해야 할 행위냐 하면 할 말은 없겠으나, 깨어있는 시간 중 대부분을 손톱과 거스러미살과 입안을 물어뜯으며 사는 내게는 책을 읽는 것도 ‘그런’ 행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눈에 보이는 성취’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써내려오다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게 바로 손으로, 한정된 분량 안에서, 빠르게 써내려가는 손바닥 글쓰기의 매력이 아닐까?* 손으로 써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생각을 풀어나갈 시간은 있지만, 문단을 통째로 들어내거나 구조를 이리저리 바꿀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한.



*『손바닥 사유: 일상에 붙인 각주들』은 손바닥만한 노트에 손으로 써내려간 글을 거의 그대로 옮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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