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웬일로, 목욕탕

손바닥 네 개짜리 글

by 이일리


웬일로, 목욕탕

(260202)



 목욕탕을 다녀왔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찜질방에 갈 겸 부대시설로서의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목욕탕만 이용하기 위해서, 심지어 함께 탕에 들어갈 엄마나 친구도 없이. 세신을 받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그고 명상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다. 뻐근한 왼쪽 어깨도 한몫했지만, 아무래도 가장 영향을 끼친 건 정혜덕 작가의 『아무튼, 목욕탕』이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여탕 입구에 들어서니, 신발장 번호를 고르는 것부터 용기를 발휘해야 했다. 소극적인 마음가짐으로 입구에서 가까운 신발장에 신발을 넣어두고 안에 들어가보니, 내가 선택한 번호의 락커룸이 거의 입구에 붙어 있어 사람들이 들고 날 때마다 알몸을 가리기에 급급할 것 같았다. 조금 더 적극적인 마음가짐을 발휘하며 안쪽을 둘러본 뒤 안전해보이는 락커룸의 번호대를 기억하고 신발을 옮겨두었다.


 손바닥 두 개 사이즈의 방수팩에 든 소박한 샤워용품을 들고 목욕탕에 들어서보니 생각보다 좁고 사람도 많았다. 아무래도 어르신 많은 동네의, 역 근처 사우나인 데다가 일요일이기까지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도 내 몸 하나 앉힐 자리 없으랴 하는 생각을 하며 일단 깨끗이 샤워를 했다.


 샤워하는 동안 내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지만, 확실히 이십 대때만큼 노골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여전히 이 목욕탕에서 막내인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결혼은 했는지, 아기는 있는지 하는 질문은 받음직한 나이가 되었다는 걸까. (물론 그런 질문은 받지 못했다.)


 샤워를 마친 뒤 주변을 살펴보니, 40도의 온탕과 그보다 몇 도 더 높은 열탕, 18도의 냉탕, 그리고 두어 개의 사우나실이 있었다. 뜨끈한 공기 속에서 땀을 내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기에 내 선택지에는 온탕과 열탕, 냉탕뿐이었고 그러므로 당연하게도 좋게 말하자면 옥빛의, 그저 그렇게 말하자면 연두빛의 물이 뿜어져 나오는 온탕으로 향했다.


 온탕은 직사각형의 한 변에 세 명 정도, 친한 사이라면 네 명까지도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서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거리를 두고 탕에 몸을 담궜다. 뜨겁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딱 적당히 뜨뜻하니 좋은 온도였다. 온탕에 목까지 담근 지 10초쯤 흐른 뒤 나는, 발끝을 대어 몸을 고정할 수 있는 욕조와 달리 목욕탕에서는 몸 어딘가에는 힘을 주어야 둥둥 떠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혹시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내게 알려주면 좋겠다.)


 온탕에 들어간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쯤이면 됐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정말 물에 몸을 담그는 일에 소질도 관심도 없던 것이다. 하지만 11,000원이라는 입장료를, 그리고 아직 내가 느끼지 못한(정혜덕 작가가 푹 빠질 만한) 목욕탕만의 매력을 떠올리고 상상하며 조금 더 버티기로 했다.


 목욕탕은, 본래 내 목적이었던 명상과는 잘 맞지 않는 장소인 것 같았다. 일단 몸에 힘을 빼고서는 제자리에 고정되어있을 수가 없었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 그래도 서로 잘 아는 사이처럼 보이는 아주머니들이 냉커피와 매실차, 비타민 음료 같은 걸 꾸준히 나르며 나눠마시는 모습을 흘낏흘낏 보는 건 재미있었다.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아주머니들이 나처럼 조금은 어색하게, 그러나 편안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걸 은근슬쩍 확인하는 것도. 이 공간에서 미묘한 어색함을 견디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약간의 동질감이 들었고, 마침 그런 분들이 내 왼편과 오른편에 한 분씩 앉아계셨기에 괜히 보호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냉탕과 열탕을 모두 경험해본 뒤 나는 다시 온탕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는 모서리 자리가 비어 모서리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그 자리에 앉아보니, 몸을 양 모서리에 밀어넣듯 기대 앉는 게 한 변에만 기대 앉는 것보다 훨씬 자세 유지가 쉽다는 것을 알았다. 모서리 자리가 상석이네, 하고 생각하며 진짜 명상에 들어가보려던 차에 머리를 수건으로 말아올린 한 아주머니가 맞은편 모서리에 자리를 잡았다.


 앞에 계시던 두 분, 그러니까 ‘매실차와 비타민 음료 같은 걸 나눠마시던’ 두 분과 몇 마디 안부 인사를 주고 받으신 그 분은 갑자기,


 물을 밀어내듯 퍼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누시던 두 분이 거기에 동참했다.


 나는 그저 어리둥절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물의 높이를 낮춰 새로운 뜨뜻한 물을 더 받으려고 하시는 건가, 생각하고 있었다. 저 움직임이 금방 끝날 것을 기대하며.


 그러나 그 분은 이제 물살을 가르며 네모난 온탕을 휘젓고 다니시기 시작했다.


 그쯤되니 내 왼편에 앉아계시던 분은 온탕 밖으로 나가버리셨는데, 나는 여기서 『아무튼, 목욕탕』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탕 안에서 치매에 걸린 한 노인이 큰일을 보는 바람에 물을 다 빼고 새로 받았다던. 하지만 이 탕 안에는 딱히 그럴 만한 사건도 없었고,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라 해도 저 분들이 여전히 몸을 물에 담근 채로 계시지 않은가. 나의 혼란은 점점 커졌다. 그 와중에 내 오른편의, ‘커뮤니티에 속하지 않은’ 분이 그 움직임에 ‘어색하게’ 동참했고 그래서 나는 약간의 배신감까지 들었다.


 나를 제외한 온탕 속 모든 인원(그래봐야 네 명이었지만)이 모두 각기 다른 방향과 각기 다른 속도로 물을 퍼내거나 떠내고 있었다. 나도 이 세계의 알 수 없는 규칙을 따르고 싶어졌으나 행위의 목적을 모르니 물을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밀어 내보내야 할지도 몰랐고 그래서 도무지 손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물을 이리저리 밀어내며 온탕을 휘젓고 다니던 그 분은 이제 나의 코앞까지 왔다. 나는 그 분의 일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찔끔찔끔 엉덩이를 움직여 자리를 피했다. 한 번에 1cm씩, 세 번쯤 움직였을 때 그 분이 갑자기 내게 눈을 맞추며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모서리에 더러운 게 많이 모여서.”


 아, 바로 그 이유였다. 아무리 새 물이 채워지고, 채워지다 못한 물이 네 개의 모서리 밖으로 출렁이며 넘친다 해도 미처 밖으로 튕겨나가지 못한 일부 이물질과 찌꺼기는 네 개의 모서리에 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아아-’ 소리를 내며 감탄하듯 웃었다.


 그 웃음은 단순히 머쓱함과 궁금증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만은 아니었다. 목욕탕이라는 세계의, 내가 알지 못했던 규칙과 작동원리를 깨우친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 스스로가 철저히 외부인이라고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타자에 의해 완벽히 소외된 것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며 찾아오는 안도. 그런 것들이 모여 탄성 같은 웃음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그 분은 몇 차례 더 손을 휘젓다가 다시 본래의 모서리 자리로 돌아가 앉으시곤 고요히 눈을 감았다. 오버 조금만 보태자면, 꼭 부처 같았다. 나는 계획보다 조금 더 오래 온탕에 머물렀다.


 찜질을 하지도, 때를 밀지도, 물속에 있던 시간을 마냥 즐기지도, 목욕탕을 나서며 바나나우유를 먹지도 않았지만 오직 그 하나의 경험만으로 목욕탕에 잘 다녀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튼, 목욕탕』 덕분에 웬일로, 목욕탕에 가서 그 작고도 큰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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