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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프 Mar 01. 2022

나 MBTI E 된 거 아니야?

※ MBTI 과몰입 글 아닙니다.


요즘 내 인생에 다시 없을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스트레칭하고, 책 읽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영어학원 갔다가 집 와서 밥 차려먹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책 읽고 자고, 가 아니라, 오늘은 이 사람들이랑 술 먹고, 내일은 저 사람이랑 밥먹고, 내일모레글피는 그 사람이랑 커피 마시고, 하는 식으로.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어쨌든 혼자 있는 게 최고'라는 생각으로 살다가 서른을 맞이하면서 갑자기(는 아니겠지만) '사람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거 꽤 좋은 일인데?'라고 생각하게 됐는데, 이렇게 바뀐 이유를 좀 생각해봤다.


첫 번째. 한숨 한번 쉬었을 뿐인데 '이번에는 또 누가 스트레스 받게 했냐, OO 때문이냐'고 대뜸 맞는 말을 직구로 던져버리는 사람들(=회사 동료들)과 즐기는 오붓하고 화끈한 시간의 재미(=술 먹는 재미)를 알아버린 것. 미리 잡는 약속보다 갑작스레 잡히는 약속이 10배 정도 많은데, 예전같았으면 할 일 해야 한다고 칼같이 끊고 집에 갔을 걸 요즘은 누군가가 잡아주기를 바랄 정도로 재밌어 한다. 하루 중 상당 시간을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 그 날의 스트레스 요소를 구구절절 설명 안 해도 딱 딱 아니까.


두 번째.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바람에 혼자서는 도저히 꾸준히 책을 읽거나 꾸준히 공부를 할 자신이 없어 어떻게든 강제성을 만들려고 독서 모임을 두 개나 잡아버린 것. 하나는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구와 격주(그것도 일요일 오전에 늘어지지 말자며 대뜸 11시 이전 만남으로 잡아버린)로 카페에서 만나는 모임이고, 다른 하나는 상담심리 관련 전공서적 1회독을 목표로 매주 화요일 밤 온라인에서 만나는 화상 모임이다. 전자는 익숙한 사람이어도 후자는 낯선 사람이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지 않을까 했는데 나오는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면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


세 번째. 인간 자체의 에너지 역치가 높아진 건지,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피로도를 느끼는 비율보다 즐거움을 느끼는 비율이 훨씬 높아졌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매 만남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흥미로운 것을 얻게 된다는 것. 그게 지식이든, 통찰이든, 혹은 그냥 내가 지금까지 생각지 못했던 사람의 어떤 모습이든.


물론 이렇게 사람을 만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쏟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평일 기준으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최대 세 시간밖에 안 되는데,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차곡차곡 날리고 있으니까. 그래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점에서 일단은 꽤 만족스러워하기로.


(사실 이 글의 제목을 '사회성 결여 인간 INTJ이던 나, 사회성 개짱에 돈도 잘 벌고 처세술도 능한 ENTJ되다?!'로 할까 5초 정도 고민했다. 다시 말하지만 MBTI 과몰입 글은 아님. 아무튼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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