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 채소 다양성

by 이일리


[weekly illy] 25.07.14-25.07.20



내 인생에서 채소를 이렇게 꾸준히, 많이, 다양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먹어본 적이 있을까. 요즘 아기들은 이유식을 통해 채소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먹어본다지만 내가 아기일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므로 아마도 지금이 처음일 것이다.


혼자 있을 때, 그리고 시간이 많을 때 배달 음식을 시켜 폭식에 가까운 과식을 하는 것이 나의 지독한 습관이었는데 지난 2주 간은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서 시간이 많기까지 한 데도 그랬다. 더 신기한 점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자 하는, 또는 폭식에 가까운 과식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지로 누른 게 아니라 애초부터 그런 욕망이 별로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식이를 조절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건강치 못한 음식을 주문해 입안 가득 우물거리는 일에 대한 열망이 줄어드는 건 익히 경험해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열심히 채소를 챙겨 먹을 수 있던 것은 첫째로 시간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며, 둘째로 가까운 곳에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채소를 소량으로 자주 살 수 있으니 언제나 집에 두 종류 이상의 채소가 있고, 집에 채소가 있는데 요리할 시간이 남아도니 기어코 채소를 먹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 몇 가지 채소를 돌려 먹다 보니 다른 방식의 조리법을 탐구하게 되고, 다른 방식의 조리법을 채택하려다 보니 또 다른 채소를 구매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예전 같았으면 굳이 안 샀을 채소도 구매해 또 다른 조리법을 찾아보게 되고...


지난주에는 한 단에 천 원밖에 안 하는 부추를 사는 바람에 부추를 일주일 내내 먹다시피 했다. 가지가 네 개에 천 원이길래 냅다 사오는 바람에 라따뚜이를 두 번이나 해 먹었고 세 개에 천 원 주고 산 오이가 무르기 전에 먹으려고 오이탕탕이도 해서 이틀이나 먹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점심엔 남은 가지를 해치우느라 오이를 또 사서 오이가지냉국을 만들어 먹었다. 살면서 내 손으로 오이가지냉국을 만들어보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쯤 되니 창의성은 시간이 있어야 발휘되는 능력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회사 출퇴근할 때는 배달 음식이나 안 시켜 먹으면 다행이고, 뭐 먹을지 한참 고민하다 앞다리살 사서 제육볶음이라도 해먹으면 부지런했다고 뿌듯해할 정도였는데. 다시 출퇴근을 시작하면 예전처럼 돌아가려나. 그래도 시장이 코앞인 이상 예전보단 더 많은 채소를 먹겠지.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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