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비키를 곁들인
[weekly illy] 25.08.11-25.08.17
인생 첫 실업급여를 받아봤다. 오십이만팔천원. 인생 첫 대지급금도 받아봤다. 칠백만원. 회사로부터 받아야 할 금액의 반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국가야, 고마워,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일단 한시름은 놓았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꺼내 쓰면 그만이었지만 그랬으면 조금 많이 울적했을 것 같다.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일견 긍정적인 면이 있어서 상황이 이렇게 되었음에도 지나온 일을, 내가 내렸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디 좋은 기회가 생기고, 그걸 내가 잘 잡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면 내 지나온 일들도 중요한 경험이자 그림의 밑바탕이 되는 거니까. 어릴 적 쌓아온 자기합리화 능력이 이렇게까지 빛을 발할 줄은 몰랐다.
사실 좋은 기회가 조금이라도 보여야 지나온 일에 대한 미련을 떨쳐낼 수 있는 법이다. 이번 주간이 특히 그랬다. 거의 합격 직전이던 회사에서 연락이 와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 포지션이 닫혀 나를 채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산업군도, 직무도 100% 마음에 들었고 몇 차례의 면접과 기타 전형에서 회사에 대한 기대감과 만족도가 매우 올라가 있는 상태였던 데다가 첫 번째로 면접을 본 회사에 바로 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쁨을 누리기 직전이었는데. 인사 담당자 분이 많이 아쉬워 하시길래 마음은 좀 달랬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쉬웠고, 어디 가서 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산업군의 마음에 드는 직무를 찾아 지원하고 서류 합격 후 면접을 보고 ... 의 과정을 반복하나 싶어 마음이 좀 괴로웠다. (맞다. 나는 첫 술에 배부르길 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뒤에 바로 너무 재밌어 보이는, 나의 이력과 성향과 120% 맞는 공고를 발견했다. 흔하게 나오는 포지션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에 지원자 중에서도 상위권에 들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지만, 동시에 회사의 규모를 고려했을 때는 서류에서 바로 탈락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서류에 합격하더라도 1차 면접에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도. (잡 디스크립션에 적힌 직무와 요구조건이 얼추 일치할 경우 면접에서 떨어질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거의 자신감을 인간으로 빚어놓은 듯한 모습인 나로서는 흔치 않은 생각이다...) 어쨌거나 지원은 했고, 놀랍게도 서류 합격 후 면접 날짜를 잡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생각의 흐름을 탄 것이다.
1. 첫번째 회사에서 최종탈락하기 전
비록 <이전 회사>가 몇 달치 월급을 체불하고 내 무난했던 인생/커리어 계획을 꼬이게 하긴 했어도 <이전 회사>로 이직해 산업군을 변경해 일한 덕분에 <첫번째 회사>에서 나를 좋게 봐주었으니 <이전 회사>로 이직했던 건 잘한 일이다
2. 첫번째 회사에서 최종탈락한 후
... 잘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했나? 아 진짜 돈도 못 받고 커리어도 말아먹게 생겼네 아니 포지션 열기 전에 충분히 논의를 했어야지 왜 이거 저거 다 해놓고 이제 와서 아휴
3. 두번째 회사에서 서류합격한 후
... 근데 오히려 탈락했기 때문에 <두번째 회사>에 지원해서 면접까지 볼 수 있게 된 거잖아? 내가 지금 시점에 이렇게 큰 규모의 회사에 지원할 거라고, 서류라도 합격할 거라고 생각도 안 해봤는데? 어쨌거나 면접을 한 번이라도 볼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이거 완전 내 인생의 초럭키비키잖아?
아무튼 그리하여,
다음주에는 부디 두 술에 배불렀다는 내용의 주간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