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1. 허리를 삐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by 이일리


[weekly illy] 25.10.06-25.10.12



추석 다음날 아침, 허리를 크게 삐었다. 원래도 허리가 좋지 않지만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는데 추석날 밤 딱딱한 방바닥에서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잠을 설친 이후, 뻐근한 허리를 문지르며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삐끗- 해버린 것이다.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똑바로 일어서려고 하면 엉치부터 허리 아랫부분까지가 뭘로 콱 막힌 듯 움직여지지가 않아서 오리궁둥이 자세를 하고 겨우 서 있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핫팩으로 허리를 지지며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다음날인 수요일에야 겨우 근처 한의원을 찾아 간단한 조치를 받았다. 혹시 추가적인 이상이 있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어 정형외과를 찾았지만 근처 모든 정형외과가 휴무였기 때문이었다. 한의원이 열었기에 망정이지 하고 생각한 것도 잠시, 각종 뜨끈하고 따끔한 것들의 향연이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나니 한의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휴일이 며칠이나 더 남았는데 이렇게 소중한 연휴를(게다가 금요일에 연차까지 썼는데) 허리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한다니! 하고 심적 오열을 할 준비를 마쳤지만 음, 오히려 좋았다. 어차피 남은 연휴에 뭘 할지 정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뭐라도 하러 나가기엔 날씨가 구렸다. 제일 만만한 캠핑을 떠올렸지만 허리가 이 모양이니 갈까 말까 고민의 여지도 없었다.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덕분에 아무 미련도 고민도 슬픔도 자책도 없이 남은 휴일의 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 평소 보지도 않던 스팀 게임 유튜브나 보며 보냈다. 러닝을 포함한 그 어떤 운동도 하지 않고 하루 한 끼는 꼬박꼬박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술까지 챙겨 먹으면서.


몇 년 전까지 버스, 기차, 비행기 등 남이 운전하는 무언가를 타고 움직이는 시간을 좋아했었다. 그러고 있는 동안에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까. 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 조금은, 여전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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