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0. 자책방지위원회

by 이일리


[weekly illy] 25.09.29-25.10.05



딱 하루, 토요일만 쉬고 나머지는 모두 5km씩 뛰었다. 아침 출근 전 뛰는 게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그보다 더 이상적인 결과물은 아침에 뛰지 못한/않은 날에는 점심에, 또는 저녁에 뛰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14일 중 13일을 뛰었다는 업적을 달성했고 이 중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근 3개월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냈다. 꽤 오랜 기간을 아침마다 5km씩 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그 꿈에 좀 가까워진 것 같다.


사실 최근에는 기록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그러니까 존2에서 존3 정도로만 슬렁슬렁, 그러다 마지막에 속도가 좀 붙으면 존4까지 가는 정도로만 뛰어왔고 앞으로도 아침에는 그렇게 뛸 예정이다. 왜냐하면 러닝의 목적이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 뛸 수 있었다.


3주 전까지만 해도 아침 5km 러닝의 목적은 암묵적으로 체중 감량이었다. 당연히 건강과 활기 같은 것들이 곁들여져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암묵적으로. 그러다보니 여러 이유로 자꾸 미루게 되었다. 일단 아침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어려움이 첫번째였고, 그냥 저녁에 뛸까 하는 생각이 두번째였다. 5km를 뛰어봐야 소비되는 칼로리는 250kcal 내외로, 간식 한두 가지나 식사량을 덜어내는 게 체중감량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으로도 종종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 뇌과학 관련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아침에 걷기보다 좀 더 복합적인 운동을 하면 뇌를... ~생략~ 아무튼 결론적으로 "더 똑똑한 뇌로 일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을 마주쳤다. 이 내용은 당연히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그 순간 이걸 제대로 써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체중 감량을 위한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그 중 꼭 아침 5km 러닝을 택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날 하루를 똑똑하게 일하기 위한 수단으로는(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전자보다는 적고) 아침 5km 러닝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고.


결론적으로 14일 중 13일을 뛰러 나가는 데에 성공했고, 당초 목적과는 달리 아침에, 5km를 뛰는 대신 점심이나 저녁에, 3km를 뛰는 날도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중에선 가장 좋은 달성율을 보였으니 역시 이 방식이 잘 먹힌 것 같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또는 나의 모든 상황에서 이러한 조건을 대입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내가 아침 5km 러닝을 루틴처럼 실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래의 조건 덕분이다.


1. 재택근무

2. 오전 9시 30분 출근

3. 1km 이내 거리에 한강 산책로

4. 그간 쌓아온 체력과 러닝 경험


만약 내가 재택근무가 아닌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출근 전에 러닝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재택근무라 해도 출근시간이 오전 8시 30분이었다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전 9시였다면 뭐, 노력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성공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전 8시쯤 일어나는 것과 오전 7시 30분쯤 일어나는 건 나에겐 하늘과 땅 차이다.) 집 근처에 한강이나, 기타 뛸 수 있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지 않았더라면 역시 러닝 습관을 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작년과 올해 초중반 열심히 뛰었던 경험이 없었더라면 매일 뛰기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또 이런 조건들이 만족됐다고 날로 먹었다는 건 절대 아니고, 저런 조건들이 다 만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야겠지, 나가야겠지, 뛰어야겠지... 하는 나와의 지지부진한 싸움이 좀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냐 하면,

사람들이 내 의지력은 왜 이렇게 약할까,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하는 자책을 좀 덜 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 사람은 저런 환경에 있으니까 저게 되는 거야, 나는 안 돼, 라고 선을 그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조건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과 아닌 영역을 구분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조정해나가는 것. 우리집 근처에 뛸 만한 코스가 없고 이사도 갈 수 없다면 헬스장에 등록해야 하지만, 만약 이사를 갈 수 있다면 뛸 만한 코스가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는 방식으로. (실제로 나는 지난번 우연히 한강 1km 이내에 위치한 집을 구했고, 이번 집으로 이사할 때 내 정신건강을 위해 의도적으로 한강 1km 이내의 집을 찾아 이사했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의지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만약 진짜 내 의지력이 강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내외부적 환경을 조성하고 단계별 실패 사유를 모아 분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게 내가 '노력하는 것을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로 '자책방지위원회'를 만든 이유기도 하다. 20년이 넘는 기간을 난 왜 이렇게 게으를까, 난 왜 꾸준히 하는 게 없을까 자책해온 자책 전문가로서 누구보다도 자책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스타 계정 만들어 게시물 조금 올리다가 멈춰버리긴 했고 이걸로도 조금 자책할 뻔했다 . . .)


'자책방지위원회'라는 타이틀을 달고 더 많은 활동들을 하고 싶다. 그게 어느 방향이어야 할지 아직 모르겠어서 계속 헤매고 있지만. 사람들의 경험을-실패 사례와 성공 사례를 모두- 듣고 내 경험을 이야기하며 상호작용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 어쩌면 그게 이번 생에서 내가 가장 바라는 일일지도.

작가의 이전글25-39. 집순이내향인의 토요일성수젠틀몬스터러쉬방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