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눈물을 담은 짭조롬한
어제 아들이 하교 후, 오열을 하면서 돌아왔다. 눈물자국으로 아들의 안경알이 온통 뿌얳는데, 그 너머의 눈도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말하지 않으려는 아이를 조심조심 달랬다. 그렇게 한참을 안고 달래고 나서야 무슨 일인지 들을 수 있었다.
아이는 급식을 먹고, 남은 음식을 버리러 걸어가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자기 손에서 식판이 미끄러지듯 기울어지면서 급식판 안에 있던 음식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음식들은 열어놓은 어떤 여자 아이의 가방 안으로 쏟아진 것이다. 그 탓에 가방 안에 있던 여자 아이의 필통과 물통, 그리고 새로 받은 반티는 모두 음식물로 뒤덮이고 말았다.
당연하게도 여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무척이나 아끼던, 그러나 음식물 찌꺼기로 젖어 버린 필통을 부여잡고서.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반 티가 된장국물 범벅이 된 것을 보면서 여자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대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아이도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하면서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같이 음식물을 치워주는 것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옆에서 눈물만 흘렸다고 하니, 그 이야기를 듣는 내 속은 타 들어갈 지경이었다. 그렇게 사회성 치료를 받고, 상담을 받아도 아직 아이는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했던가 보았다.
담임 선생님은 두 아이를 따로 불러 우리 아이에게 사과를 시키고, 그 여자 아이의 마음도 달래주셨다고 했다. 고의가 아닌 실수로 일어난 일이고 이미 벌어진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마음을 잘 추스르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어른도 힘든 ‘마음 추스르기’가 아이에게 쉬울 리 없지 않은가. 난 여자 아이가 아끼는 필통이라도 알아봐 주실 수 없는지 담임 선생님께 여쭤보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고, 반티를 빨아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의 반티와 바꾸겠다고 했다.
학원에 갔다가 돌아온 아이에게는, “너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수습을 해야 하고 울기보다는 그 아이의 물건에 묻은 음식물이라도 얼른 닦았어야 했다.” 고 일러주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지기
내 기분보다는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이를 먼저 생각하기
이 두 가지를 반복해서 일러주면서 다른 평범한 아이들도 이런 일들을 말해줘야 할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또래보다 늦되고 조금은 부족하게 태어난 우리 아이는 남들보다 더 10배 20배 반복하고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내가 과연 우리 아이를 키울 만한 깜냥이 되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나의 한바탕 훈계 후, 아이는 편지를 썼다. 그동안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며 아이를 흘끔흘끔 보긴 했지만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편지를 쓰면서 또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가 보였지만 스스로 눈물을 닦아내고 편지를 완성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편지를 다 쓴 아이는 자기가 아끼는 두쫀쿠 찰떡파이 간식과 함께 편지를 봉투에 넣더니 가방에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담임 선생님 말씀으로는 여자 아이의 필통은 어제 빨고 나서 원상복구가 되었다고 했다. 여자 아이의 부모님께서도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빨리 감정을 털어버리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생각할수록 죄송하고 감사한 부분이었다. 아이가 여자 아이에게 편지를 전달했을 때도 표정이 밝았다고 하는데, 편지를 읽은 여자아이의 기분이 어떨지는 또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지만, 내 그릇이 간장종지만큼 작은 탓일까. 늘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디딜 때처럼 조심스럽고 불안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천국와 지옥을 오간다. 이렇게 하루가 다 지나가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오늘 하루 무사히 보냈다는 안도감을 얻곤 한다. 아이도 나도, 아직은 자라는 중이고 우리가 다 자라는 날은 아직 많이 남은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