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은 마음이 무거운 채로 지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마음이 쓰여 그런가 보다.
토요일 시댁에 방문했는데 아버님, 어머님께서 수술을 하신다고 한다. 하지정맥 수술인데 말씀은 안 하셨지만 상당기간 동안 다리가 편찮으셨는데 참고 미루신 것 같다.
다행히 아는 분의 소개로, 그리고 두 분이 함께 하신다는 이유로 수술비용을 많이 할인해 준다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님만 실비보험 가입이 되어 있으시고 어머님은 가입이 되어 있지 않으시니 비용이 적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10년 전, 올케가 수술할 때만 해도 200만 원 상당이었던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선뜻 수술비의 절반을 드리고 싶었으나 요즘 우리 집 사정이 그냥 그래서 선뜻 그렇게 하지 못했다. 오빠와 내가 두 분을 뵙고 수술 잘하고 오시라고 말씀드리며 먹은 돼지갈비 6인분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맛있게 저녁을 먹었지만 왠지 두 분께 죄송스러웠다. 봉투를 건네드렸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셨을 두 분이지만 그조차 내밀지 못한 것이 아직도 싸하니 마음 한편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저녁을 먹고 시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올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언니, 내일 저희 집에서 다 같이 점심 먹어요. 떡국 먹으려고 준비해놨거든요.'
친정 식구들은 일주일에 한 번, 거의 매주 일요일에 부모님 댁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와 남동생은 친정 근처 한동네에 살고 있어 주말에 모여 점심을 먹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가끔 엄마, 올케가 음식을 해서 먹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우리 집에서 먹기도 한다. (우리 집은 그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하다.)
'응, 고마워. 근데 우리 집에 반찬이 좀 있는데 우리 집에 와서 끓여 먹을래?'
종종 자기 집에서 음식을 해서 나눠 먹자는 올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 같지도 않은 제안을 했다. 마음은 항상 시댁이든 친정이든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시원찮은 나의 요리 실력이 발목을 붙잡는다. 아니, 어쩌면 요리 실력보다 내 마음의 크기가 그 정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일요일 오후, 준비되는 대로 얼른 건너오라는 올케의 메시지가 왔다. 얼른 아이를 씻기고 준비해서 건너가니 굴과 소고기를 함께 넣고 끓인 뽀얀 국물의 떡국이 냄비에 한가득 담겨 있다. 반찬은 김치 두 접시.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음식과 올케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나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보게 했다.
거하게 무엇인가를 차려내야 손님을 초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식구들을 초대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올케는 소박하더라도 다 함께 한 끼 식사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두고 간단하게 있는 대로 뚝딱 차려낸다. 물론 우리는 자주 올케네에 밥을 먹으러 간다.
일요일 점심, 친정 식구들과 떡국을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마음 한편이 또 무겁게 느껴진다. 무겁다 못해 불편하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마음의 그릇이 있다고 하던데....... 내 마음 그릇은 간장종지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닌 마음에 있음을 잊지 말자.'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내 마음의 불편함이 하루아침에 가시지는 않겠지만 내일은 아버님, 어머님께 전화드려 안부를 묻고, 조만간 식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내가 차릴 수 있는 선에서 정성을 담아 식사 대접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