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세헌 May 17. 2023

암흑기에 피어난 그루브

김명길 (데블스) 1947 – 2020.5.17

  데블스는 오랫동안 잊힌 존재였다. 2집 앨범의 재발매와 <고고70> 등 관련 영화의 개봉이 이뤄진 건 그들의 활동이 뜸해진 지 삼십 년 가까이 지난 후였다. 한국에도 소울 밴드가 존재했다는, 좀 더 거칠게 말하면 이 땅에도 흑인 음악이 있었다는 사실을 음반제작자와 영화기획자는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김명길은 두번째 줄 맨 오른쪽. (연합뉴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제공)


  데블스는 당시로서는 국내에 흔치 않은 소울 음악을 구사하는 밴드였다. 미8군 전속이 아닌 기지촌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들은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를 통해 주목을 받으며 이내 서울의 나이트클럽 무대를 장악하고 한 시절을 화려하게 누빈다. 트럼펫과 색소폰을 동반한 6인조 구성은 당시 영미권 소울 밴드들의 전형적인 라인업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작곡으로 채워진 네 장의 정규앨범을 냈다. 심금을 울리는 몇몇 곡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일반가요에 가까웠다.


  그들의 진가는 이후 언급하는 가수들의 음반에서 드러난다. 밴드의 리더였던 김명길은 이은하의 <밤차>와 <아리송해>, 윤승희의 <제비처럼>, 정난이의 <제7광구>가 수록된 음반의 편곡을 맡았다. 특히 데블스가 앨범 전곡을 연주한 정난이의 앨범은 그야말로 펑크, 소울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때의 연주가 훨씬 박진감 넘치고 그루브가 살아있다. 데블스가 좀 더 활동을 이어갔다면 어땠을까? 물론 당시 한국사회는 대중음악 뮤지션들에게 결코 안정된 환경이 아니었다. 서슬 퍼런 현실 속에서 ‘철창에 갇힌’ 밴드 음악으로 뚜벅뚜벅 나아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위대하다.

작가의 이전글 디스코의 여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