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우알파 유팡키 1908.1.31 – 1992.5.23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지리적 거리만큼 멀다. 그러한 거리감은 그곳의 많은 나라들을 단편적인 잣대를 통해 이해하는 습성을 종종 갖게 한다. ‘잘 사는가 못 사는가, 축구는 어디가 잘하는가, 어디에 미인이 많은가, 여행지로 어디가 볼 게 많은가’라는 식으로 일종의 등급을 매기거나, 그나마 나아가면 국가별로 민주화의 유무를 가리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현대사를 좀 더 들여다보면 서구열강의 식민지배 이후 군사정권과 저항세력의 대립, 민주화의 과정이 동아시아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한 정치현실 속에서도 노래로 현실을 고발하고 의식을 고양시키려는 뮤지션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아르헨티나의 유팡키(Atahualpa Yupanqui) 역시 그랬다. 그는 빅토르 하라와 같은 투사는 아니었지만 안데스 인디오의 자긍심과 고단한 현실에 처한 민중의 삶을 노래했다. 안데스 산맥을 직접 오가며 채집한 민속음악들은 작곡을 위한 보고였다. 그의 예명은 잉카 제국의 황제 이름에서 따왔다. 아타우알파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에 의해 살해된 마지막 황제, 유팡키 역시 역대로 이어온 황제들의 성이다.
한때 그는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투옥과 강제추방을 당하며 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었다. 1967년부터 그는 파리에 정착한다.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메르세데스 소사는 관련 작품집을 내며 그의 페르소나를 자처했다. 마치 1970년대에 양희은이 김민기의 노래들을 불렀던 것처럼.